강 론 말 씀

2021년 2월 24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dariaofs 2021. 2. 24. 06:05

오늘 미사의 말씀은 구원의 표징을 알아보라고 촉구하십니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예수님의 현존과 그분의 말씀, 그리고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이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보내 주신 구원의 표징이지만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줄곧 또 다른 무엇을 원합니다. 그들은 기존 종교 기득권의 제도적 프레임 밖에서 등장하신 예수님에 대해 회의적이고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끝내 거두지 않지요.

"요나 예언자의 표징"
오늘 제1독서 대목에서 우리는 니네베에 주님의 말씀을 선포한 요나 예언자를 만납니다. 그렇다면 요나의 시대와 예수님 시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요나의 표징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 요나는 '번복 불가한 주님 부르심의 표징'입니다. 첫 부르심을 피해 도망갔던 그가 사흘이라는 죽음의 시간을 거쳐 결국 그 부르심에 합당히 응답하는 자리로 돌아온 것이지요. 우리가 아무리 피해 달아난들 주님께서 주신 소명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아버지의 뜻이지요.

둘째, 요나는 폭풍이 요동치는 바닷물 속에 던져져 큰 물고기에게 먹히기까지 했어도 결국 생명의 손상 없이 되살아나게 하시는 '하느님 능력의 표징'입니다. 사흘이라는 죽음의 시간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통로임이 결국 예수님에게서도 드러날 것입니다. 당장 우리를 삼킬 듯 엄습하는 집채같은 파도나 사나운 존재도 하느님 구원의 도구일 뿐이니 우리는 아무리 두려워도 지레 무너지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셋째, 요나는 '구원의 보편성의 표징'입니다. 선민 사상에 물든 이스라엘에게는 불편한 진실이 되겠지만, 하느님의 구원 의지는 이스라엘 경계를 넘어섭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을 함락시키고 하느님 백성을 유배로 끌고 간 앗시리아 왕국의 니네베에게도 주님께서 요나를 통해 구원의 손길을 베푸셨으니까요.

넷째, 요나는 '믿음이 본방인 이방인 가릴 것 없이 내리는 은총임을 수용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표징'입니다. 요나 앞에서 펼쳐진 하느님의 구원은 불평쟁이 요나에게 불쾌한 도전이었지만, 그가 니네베의 구원을 바라건 바라지 않건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을 이루셨고, 이 모든 일이 요나의 눈 앞에서 펼져졌지요.

사실 요나 예언서의 결말은 요나를 깨우쳐 주시려고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는 하느님의 물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요나가 계속 툴툴대며 어깃장을 놓는지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뉘우치는지, 그 다음 행동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국제 정세와 크게 다르지 않게 아직도 열려 있는 결말입니다.

다섯째, 요나의 이야기는 '인간의 통회 앞에서 줏대를 세우시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요나 3,9) 놀랍게도 이렇게 하느님의 자비를 통찰한 이는 니네베의 임금이었지요.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화답송)

하느님께서 한 번 마음에 정하신 분노와 징벌은 절대 바꾸지도 거두지도 않는 분이시라면 이 세상에 남아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때문에 후회하고 당신의 마음을 돌이키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죄인이면서 완고하기까지 한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다림과 인내, 바로 그분의 자비에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저마다 살아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그동안 보여 주신 수많은 표징 외에 더 무엇이 필요할지요! 이미 표징은 충분합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각자의 삶 구비구비마다 표징이 차고 넘치지요.

사순 시기는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의 표징을 품고 한 걸음 더 주님께 다가가는 오늘 되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은 사랑 때문에 당신을 굽히시고 돌이키는 분이시니, 죄스럽다고 주저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그분께 달아듭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