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2월 23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dariaofs 2021. 2. 23. 06:54

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 말씀과 인간 말의 대비를 보여 주십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주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그저 헛되이 허공으로 흩어져 스러지는 말씀은 없습니다. 주님의 생각과 의지, 그리고 말씀과 완성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마태 6,7)

안타깝게도 인간의 말은 빈말의 되풀이일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말은 길어지고 거짓은 늘어나며 의미는 희석되기 일쑤지요.

예수님은 하느님께 무언가를 아뢸 때 말의 양, 즉 기도의 길이보다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기도 내용이 사랑의 고백이건 절박한 청원이건 세상을 위한 전구이건 본질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기도하는 이의 마음이지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그런데 이미 아버지는 기도하는 이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며 말을 걸어오는 이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그 당사자보다 더 잘 아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기도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에 예수님께서 우리가 주님의 기도라 일컫는 기도를 알려 주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가 청할 바는 이 기도 안에 다 들어 있지요.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 일용할 양식, 용서, 유혹과 악에서 보호"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지향들 안에는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피조물 사이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을 위한 아버지의 바람이 이러하시니, 우리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바를 청함으로써 기도 안에서 그분과 일치합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마태 6,14)

정성껏 주님의 기도를 바치다가도 가끔씩은 이 대목에서 멈칫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고통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마음이 준비되지 않아 미처 용서하지 못한 이는 아버지께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뜻일까요? 우리의 아버지가, "요놈, 용서를 하나 안 하나 두고 보자. 네가 용서하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 하면서 팔짱 끼고 감시하는 분이실까요?

용서하는 것과 용서 받음이 같이 간다고 받아들이면 용서에 대한 우리의 무게가 좀 줄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하기 힘든 용서를 애써서 실천한 이는 이미 자신이 아버지에게서 용서받았음을 압니다. 그래서 때로는 용서함과 용서 받음의 선후 관계가 모호해질 정도지요. 확실한 건 우리 중 누구도 용서에서 제외된 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용서해서 용서 받은 건지, 용서 받아서 용서한 건지 계산하기 전에 이미 우리는 용서의 축복 안에 하나로 녹아 있습니다.

주님 앞의 머무름이 길어지고 기도가 깊어질수록 마음은 더 진해지고 말은 줄어듭니다. 이제는 기도의 언어가 얕은 웅덩이에서 튀어오르는 물방울처럼 가볍지 않고, 저 땅 깊은 곳에 스며들어 싹을 밀어 올리는 진중한 에너지로 응집되니, 아버지께 올려드리는 우리의 말은 더이상 빈말이 아니라 아버지 마음과 하나되는 말씀이 되어갑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정성껏 봉헌하며 그 안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 기도 안에서 아버지와 일치하고 이웃과 일치하며 세상 모든 피조물과 일치하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