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기도에 대해 들려 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 7,11)
기도는 이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기도하는 이는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또 기꺼이 들어 주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 그분을 사랑하기에 그분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그분께 머무르는 것이 기도니까요.
"좋은 것"
그런데 우리가 청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좋다고 여기시는 것이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 "좋은 것"을 허락하시는 순간에 대해서도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시차가 발생할 수 있지요. 기도하는 이는 그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다 "좋은 것"이고, 그것을 주시는 "때" 역시 가장 적합한 때임을 믿고 기다립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에스테르 왕비가 드리는 처절한 기도를 들려 줍니다.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에스 4,17-25)
이방인 임금의 왕비로 간택된 에스테르는 유다 민족을 말살하려는 재상 하만의 음모 앞에서 갈등하다가, 자신과 민족을 구하기 위해 먼저 주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
에스테르는 민족의 명운을 걸고 임금에게 하만의 흉계를 알려야 합니다. 이방 민족의 궁궐에서 도와줄 누구도 없이 지혜와 용기를 다해 악의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그녀에게 오직 주님만이 유일한 의지이고 피신처십니다.
그런데 "주님밖에 없음"은 에스테르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실존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 삶을 헤쳐나가면서 가족과 가문, 단체나 소속, 재물과 인맥 등 나름 갖가지 안전장치를 구축하고 살아가지만 모든 사람은 결국 하느님 앞에 홀로 서는 순간을 비켜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그동안 믿었던 뒷배나 보루가 신기루처럼 물러나거나 사라지는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하던 건강과 사람과 재물이 얼마나 허무한 환영이었던가를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 닥칠 때, 인간의 실존을 인식하고 살아온 이와 그렇지 않은 이와의 차이는 무척 클 것입니다. 그때가 누군가에게는 은총의 순간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절망과 추락의 때가 될 수 있습니다.
"청하여라, ... 찾아라, ... 문을 두드려라."(마태 7,7)*
예수님은 아버지께 매달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반드시 주시리라고 확신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청하고 찾아야 할까요? 다 받는다니 아무거나 청해도 되는 걸까요? 그 답은 오늘 복음 대목 끝 구절에 들어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우리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아버지께 청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께 바라는 것을 어쩌면 타인이 나에게 바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바라면, 우리 자신이 남에게 평화가 되어야 하고, 주님의 은총을 바란다면 우리 역시 남에게 선물이 되어야 하지요. 재물과 안정을 청한다면, 우리가 타인의 재물과 안정을 돌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청한 바가 하느님에게서 우리에게로 와 그대로 멈추어 버린다면 아직 그 기도는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에게서 받은 응답을 타인과 나누고 공유하며 그에게 유익이 될 때 비로소 기도의 열매가 영글고 기도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밖에는 우리를 도와줄 누구도 없는 것처럼 간절히, 맹렬히, 지치지 않고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기도의 열매는 우리 개개인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선물이니, 공동선을 위해 필요하고 요긴한 것을 청하면 더욱 좋겠지요. 골방에서 주님과 함께 머무르며 기도로 무르익어가는 사순 시기를 보내고 계신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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