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가난한 이에 대한 하느님의 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루카 16,21)
예수님은 부자의 집 대문 앞에 누워 구걸하던 라자로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하셨습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존엄이 유지되는 데는 그리 큰 것이 필요하지 않지요. 당시 라자로의 간절한 바람은 작은 빵 한 조각, 시원한 물, 오가며 나누는 짦은 인사와 안부의 물음으로도 충분히 채워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간절히 바랐다."
예수님의 다른 비유들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수식적 표현이 거의 없는데, 이 부분에서 굳이 "간절히"라고 덧붙이신 이유가 있을 듯 보입니다. 그냥 바람도 아닌 간절한 바람. 이 바람이 바로 라자로 안에서 허기지고 목마르고 투명이간 취급을 당하고 계신 하느님의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굶주리는 이 안에서 간절히 바라는 이는 실상 주님이십니다. 지금 고통으로 울며 무너지는 이들 안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는 이 역시 주님이십니다. 비유 속 부자는 이기주의와 무관심으로 자기 가족만 즐겁고 호화로운 살면 그만이라 여겼을까요? 모세와 예언자들이 전한 하느님의 가르침은 그에게 악세사리도 못 되었던 것일까요?
제1독서 대목은 마치 부자의 죄목이 담긴 공소장처럼 들립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예레 17,5)
이 세상을 움직이는 하느님의 감추인 신비를 깨닫지 못하거나 애써 부인하는 이들은 자기의 힘과 연줄을 믿고 거기에 공을 들입니다. 비리와 착취 또한 거기서 생겨나지요. 탐욕에 눈이 먼 인간과 주님 사이를 벌여놓기 위해 악마는 종종 세상이 열광하는 성공과 인맥으로 덫을 놓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예레 17,7)
복음의 비유 속 라자로는 세상에서 의탁할 누구도 없이 오직 하느님의 처분에 모든 것을 내어맡긴 이입니다. 하느님은 그의 안에서 그와 함께 신음하시고 허기지시고 바라십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이미 주님과 하나입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
비유 속 아브라함의 입을 빌어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단지 부자의 형제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미래를 꿰뚫는 예언입니다. 욕정과 탐욕으로 제 배를 채우며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는 이들은 이미 모세와 예언자의 가르침에 눈과 귀를 막은 것이지요. 그들 앞에 죽은 이가 살아난들,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신들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이웃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존재의 문간에 혹시 허기와 질병과 소외로 누워 있는 이들은 없는지 살피고 관심을 갖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의 내면에서 하느님이 간절히 바라시는 바를 묻고 경청하고 손 내밀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화답송)
이 말씀을 오늘 벗님께 격려와 응원의 선물로 드립니다. 받으십시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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