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3월 5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dariaofs 2021. 3. 5. 06:44

오늘 미사의 말씀은 모든 사건 안에 하느님의 큰 섭리가 감추어져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복음 환호송)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셨네."(영성체송)

오늘 미사의 복음 환호송과 영성체송이 복음 속 비유를 요약함과 동시에 예수님의 운명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마태 21,37)

소출을 받아 오라고 앞서 보낸 종들은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의미합니다. 악한 소작인들에게 학대 받고 죽임까지 당한 종들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스러진 참 예언자들을 가리키지요. 그럼에도 주인은(하느님은) "마침내" 외아들을 보내십니다. 그만큼 하느님은 당신 모상을 나누어 받은 사람이란 존재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으신 까닭이겠지요.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마태 21,39)

포도밭 주인이 보낸 아들의 운명은 예수님께서 받아안으실 운명입니다. 불보듯 뻔한 비극적 결말을 아시면서 어떻게 하느님은 성자를 보내시고, 왜 예수님은 이 계획에 순종하신 걸까요?

그 답은 오늘 제1독서 안에 들어 있습니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창세 37,28)

오늘 창세기의 대목은 평온한 마음으로 읽어나가기에 너무 험악합니다.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던 요셉이 시기와 질투에 눈이 먼 이복 형제들에 의해 광야에서 구덩이에 던져지고 죽음까지 당할 위험에 처합니다. 그 와중에 요셉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이집트에 종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지요.

"땅에 기근을 불러일으키시고 모든 양식을 끊으셨을 때 한 사람을 그들 앞에 보내셨으니 종으로 팔린 요셉이었다. ... 그러자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와 함족의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다."(시편 105,16-17.23)

어떤 사건 앞에서 우리는 그저 한 단면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나마도 어떨 땐 왜곡해서 보기까지 하지요. 한 사건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하느님의 뜻이 들어 있지만, 우리의 시야는 평면적이고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에게 그처럼 처절히 버림받은 요셉은 하느님의 보살핌으로 이집트에서 재상 자리에 오르고, 결국 야곱 집안을 기근에서 구합니다. 그리고 "사백삼십 년 후"(탈출 12,40 참조)에 무수히 번성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민족적 정체성의 근간이 될 엄청난 사건을 체험하게 됩니다. 한 형제들 안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에도 하느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외아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 답은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의 반응에 들어 있습니다.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마태 21,41)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분께 치욕스런 죽음을 안긴 십자가 사건은 도리어 구원의 지평을 온 세상으로 확장시킵니다. 예수님은 유다인의 임금을 넘어서 온 세상의 임금, 그리스도왕이 되시지요.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시는 구원의 섭리를 우리는 속속들이 알지 못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유한하고 우매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인생길의 희로애락, 길흉화복, 생로병사의 온갖 파도를 맞으면서, 겸손히 주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몫일 겁니다.

벗님! 구원의 그날까지, 주님 얼굴 뵈옵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그날까지,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닙니다. 지레 겁먹지 말고 미리 절망하지 말고 시간과 공간을 주인이신 주님께 피신처를 두고 그분만 믿고 나아갑시다. 주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면서도 작고 보잘것없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을 섭리하는 분이시니까요. 믿음으로 그 섭리 안을 걸어가는 벗님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