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고요한 마음으로 잠깐이나마 주님 앞에 머물러 봅니다. 그 시간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저 자신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무한히 크신 그분을 느끼고 대화하는 관상의 순간이야말로 내 몸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전날의 과음으로 몸뚱이조차 귀찮아지는 우울한 아침을 맞게 되는 날에는 성전을 어지럽힌 것 같은 죄스러움에 육신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내 몸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면서 창조물이 창조주를 느끼고 소통하는 소중한 통로의 역할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몸을 정화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채식이 떠오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깨우침을 추구하는 전통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는 것을 수행의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먹을거리가 풀과 과일(창세 1,29)이었다는 성경 말씀을 보면 인간은 본디 채식에 맞게 창조된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고기 소비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1990년에는 20㎏이던 한 사람당 연간 고기 소비량이 2020년에는 55㎏이 넘었답니다. 닭이 연간 10억 마리가 도살된다는 통계를 보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사람이 사는 집 주변에서 키우던 가축은 도시화와 함께 공장식 축산방식으로 변했습니다. 애완동물과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졌지만, 식량으로서의 동물과는 거리도 멀어졌고 마음으로도 떨어졌습니다. 자연 수명이 25년이나 되는 닭은 35일 만에 육계로 소비되고, 15년의 수명을 갖는 돼지는 6개월이면 도살이 된다고 합니다.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고 하느님의 질서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면역이 약해진 가축이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등에 의해 살처분이라는 집단 도살에 처하더니 급기야 동물로부터 전해지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간을 멈춰 세웠습니다. 이제 육식은 생태적 의미를 갖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으로 다가옵니다.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모든 교통수단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네 배가 많다는 사실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내용입니다. 고기를 얻기 위해 그보다 세 배에서 열 배나 많은 곡물이 소비되고, 곡물 생산의 40%가 육류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아직도 세계 인구의 15%가 기아 상태라는 것을 생각하면 맘껏 고기 파티를 하기에는 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최초에 풀과 과일을 인간에게 먹을 것으로 주셨고 대홍수 이후 동물을 양식으로 하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항상 정결하고 절제된 제한적인 육식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성경은 전해줍니다. 중세 시대를 통해 금육의 전통은 부유해진 교회와 상류층에게 참회와 절제를 요구하는 사회적 의미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금육의 의미는 창조 질서의 위기에 대한 신앙인의 실천이라는 새로운 해석으로 다가옵니다. 다소 형식적 느낌으로 다가오는 금육재이지만, 그것이 신앙적 진지함으로 창조 질서를 의식하며 일상 안에서 절제된 식습관으로 체화되는 은총이 되기를 청해봅니다. 그리고 형식적인 느낌의 ‘금육재’라는 용어보다 ‘고기 없는 날’이라는 생활적인 용어로 여러 사람이 손쉽게 함께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오늘은 이사야가 전한 평화로운 이상 사회가 떠오릅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이사 11,6-9)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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