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믿음의 사람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복음의 요셉과 마리아, 제1독서의 다윗, 그리고 제2독서의 아브라함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약혼녀 마리아가 혼인 전에 아기를 잉태한 사실을 알고 그녀와 파혼하려던 요셉에게 주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이야기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라는 말의 뜻을 요셉이 얼마나 이해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나고 자란 중동 문화 안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을 테니까요.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마태 1,24)
성경은 천사의 말을 그대로 따른 요셉의 모습을 군더더기없이 간결하게 전합니다. 그에게 왜 의문이나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마는, 그런 인간적인 의혹들보다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세주 아기에 대한 희망과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더 컸던 까닭일 겁니다.
제1독서에서는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국을 번영하게 만들 후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16)
이렇게 나탄을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은 단지 다윗의 아들 솔로몬까지의 계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두 번이나 "영원히"라는 수식어를 통해 이 나라가 단지 사람의 족보로만 계승되는 인간적 왕국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바로 혈통과 민족을 넘어서 이어진 영원한 믿음의 후손이라는 증거니까요.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믿음으로 후손을 얻은 성조 아브라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로마 4,16)
아브라함은 믿었고 따랐습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데에 늙은 나이나 떠돌이 유목민 처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지요.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 말씀에 따라 ... 믿었습니다."(로마 4,18)
눈에 보이는 결과를 기대하는 것을 희망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현재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믿고 바라는 투신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한다는 말을 할 수 있지요. 그리고 희망의 근거는 망상이 아니라 믿음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요셉 성인의 믿음과 순종, 겸손과 인내, 충실함을 기념하는 오늘은, 역사에 족적을 남긴 무수한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구원의 기쁜 소식을 기억하며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생생히 되살리는 날입니다.
저마다의 녹록치 않은 인생 여정 안에서, 믿음 말고는 도저히 구원을 희망할 수 없는 현실을 맞닥뜨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어렵지만 더욱 단단히 믿음의 끈을 조이고 '아버지의 마음으로(Patris Corde)' 나아가야 하지요. 아브라함처럼, 다윗처럼, 요셉처럼 말입니다. 미지의 불확실성을 끌어안고 역설 가득한 믿음의 모험에 담대히 뛰어든 여러분께 주님의 말씀을 축복으로 전합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영성체송)
성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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