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3월 22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dariaofs 2021. 3. 22. 06:06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의 자비를 만납니다.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다니 13,46)
제1독서에서는 재판관 자리에 있는 두 원로의 욕정과 모함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구원받은 한 여인의 드라마틱 한 사연이 전개됩니다. 온 백성이 두 원로의 말만 믿고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주님께서 다니엘이라는 청년의 "거룩한 영"을 깨워 이 사건에 개입하도록 하심으로써 정의를 회복해 주셨지요.

한낱 군중 속의 젊은이에 불과하면서도 영의 움직임에 민감히 반응한 다니엘, 청년 다니엘에게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원로의 지위를 인정한 다른 원로들, 무엇보다 사람에게 치욕과 모함을 받아 죽더라도 주님께 죄짓기를 거부한 수산나, 모두 주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이들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통해 악이 흐트러 놓은 혼돈과 고통의 순간을 바로잡아 주셨지요.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다니 13,60)
자칫 슬픈 비극으로 치닫을 뻔했던 이 사건은 하느님의 정의로 질서를 되찾습니다. 다행히 땅은 무죄한 이의 피로 물들지 않았고, 결백한 이는 원래의 지위를 되찾았지요. 또 죄를 지은 이들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요한 8,5)
복음에서도 매우 긴박한 사건이 전개됩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성전으로 예수님 앞에까지 끌고 와서, 예수님의 반응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이 물음이 정말로 예수님의 뜻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지요.

종교 지도자들 중 어느 누구도 수치심과 모멸감, 두려움에 가득 차 떨고 있는 이 여인을 동정하지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저 짐승 몰듯 끌고 와서는 돌로 위협하며 예수님 앞에 미끼로 내놓았지요. 함부로 생사여탈을 논하면서요. 사람의 존엄이나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보이지 않습니다. 율법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이토록 가혹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율법의 정신보다 형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예수님은 죄인으로 몰린 여인에게도, 정의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피에 굶주린 듯 거세게 날뛰는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으시고 몸을 굽혀 땅만 바라보십니다. 땅은 사람의 실존입니다. 나약하고 부족하며 육적 관계적 한계로 뒤엉켜 있는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지요."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제 사람은, 심판의 권한이 사람의 손을 떠났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 흠 없고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만 심판의 권한을 온전히 위임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율법을 수호하면서 사람을 보호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죄하지 않는 이는 단죄 받지 않을 것이고, 심판하지 않는 이는 심판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용서하는 이는 용서 받을 것이고도 하셨지요.(루카 6,37 참조) 자, 그러니 이제 죄 없는 이만 돌을 던질 수 있습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그런데 죄 없으신 분, 예수님마저 단죄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지금까지의 곤혹스런 상황으로 톡톡히 대가를 치른 그녀에게 예수님은 더 이상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 다만 미래를 당부하십니다. 그녀가 하느님의 모상성을 회복해 더 온전하고 충만한 평화의 존재가 되길 바라고 또 축복하시는 겁니다.

구약성경은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된 어느 날을 기억하고 경축했지요. 무죄한 수산나에 대한 성경 저자의 기록을 보면 그녀는 과연 정결하고 의로운 이스라엘의 딸입니다.

다분히 대조적으로, 오늘 예수님 앞에서 피 흘림을 면한 이 여인은 정황으로 보아 간음한 사람이고 죽을 죄인입니다. 율법의 눈으로 수산나에 감히 비할 수 없는 처지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하느님의 귀한 딸이고 소중한 인격체이며 존엄한 형제 자매입니다. 그분은 그저 불쌍히 여기실 뿐, 단죄하거나 내치지 않으십니다. 대신 가장 무죄한 이의 피, 바로 당신 자신의 피를 이 땅에 흘리셨지요.

사랑하는 벗님!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과 같은 시선으로 자신과 형제자매를 바라보고, 당신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과 형제자매를 연민하며, 당신의 기도에 합하여 모두의 회개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기를 바라십니다. 이 사순절이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요. 용서하시는 주님 자비에 겸손되이 모든 걸 내어맡기는 한 주간 되시길 기원합니다. 사순 시기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