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을 통해 미사의 흐름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루카 24,15)
예수님의 사랑의 제사인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마음을 모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미사는 주님 현존의 잔치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루카 24,16-17)
예루살렘에서 겪은 실패 체험으로 낙담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질문을 통해 그들 마음의 고통을 끌어내어 주십니다. 마치 미사가 시작되면 구원의 신비에 합당하게 참여하기 위해 참회의 시간을 가지면서, 주님 앞에 나서기 죄스럽고 부끄러운 모습, 죄악과 걱정, 근심을 그분께 내보이며 자비를 청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루카 24,19)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미사 때 우리가 바치는 신앙 고백과는 달리 그들의 신앙 고백은 아직 불완전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난과 죽음의 희생을 잊은 자기본위적인 기대였기에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믿고 희망한 대로의 결과를 손에 쥐지 못했지요. 그래서 침통하고 낙담했습니다.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루카 24,27)
이는 말씀의 전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독서자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내용이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요.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루카 24,29)
제자들이 예수님을 붙듭니다. 그들이 혼자서 더 멀리 가시려는 듯 보이는 예수님을 자신들의 거처와 식탁에 초대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열리고 더 관대해진 듯 하지요. 미사의 봉헌 예식에서 우리는 은총을 얻은 바를 주님께 정성껏 바치고 또 가난한 이웃과 기꺼이 나눕니다. 손을 내미는 마음이 곧 봉헌이지요.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4,30-31)
예수님께서 빵을 나누어 주실 때 제자들이 그분을 알아봅니다. 빵은 그분께서 내어 주시는 당신의 몸입니다. 우리도 미사 때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을 모시면서 그분의 현존을 누리지요.
"그러나 그분께서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루카 24,31)
예수님께서 사라지십니다. 하지만 두 제자의 심장과 영혼, 존재 안에 깊이 각인되시지요. 미사 때 성체께서 우리 안에 들어 오심으로써 당신의 형체는 사라지지만, 우리 안에 녹아들고 흡수되어 우리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영한 성체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길이 남아 우리가 그분과 하나되고, 종래에는 그분이 되게 해 줍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엠마오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빵을 받은 뒤에야 뒤늦게 깨닫습니다. 말씀의 식탁과 성체성사는 각각 그 자체로도 완전하지만, 서로를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두 식탁에 온전히 참여하는 이들의 지혜와 통찰을 강화하여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루카 24,35)
이제 파견과 선포의 때입니다. 예루살렘이 두렵고 깨진 꿈에 실망해서 고향을 향하던 이들이 가던 길을 돌이켜 수난의 도성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을 다른 제자들에게 선포하지요.
이는 미사를 마치며 세상으로 파견되는 우리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축 처진 어깨와 복잡한 마음, 무거운 발걸음이나마 주님을 향해 말씀과 성찬에 식탁에 참여하는 이는 은총으로 변모되어 그 사랑을 선포하는 이가 됩니다. 오늘 엠마오 제자들이 체험했듯, 미사는 곧 파견의 잔치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파견받은 이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
구걸하는 이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물질적인 희사를 바랐지만 그들이 가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습니다. 파견된 이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지요. 그리고 이 나눔은 그에게 당장의 육적인 양식이 아니라 건강을 되돌려 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한때의 두려움과 무지와 의혹을 딛고, 주님 이름에 의지해 주님의 능력을 전하는 진정한 사도로 거듭납니다. 미사를 마치고 파견되는 우리가 비록 가진 것 없고 능력 또한 미소해도, 우리가 가진 오직 하나 예수님의 이름이 지닌 무한한 능력을 믿으며 담대히 나아갈 때 반드시 그분께서 일하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어쩌면 우리의 영적 여정 안에서 엠마오 제자들과 예수님의 만남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다가와 동행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거룩하고 역동적인 깨달음의 여정을 충만히 걸으시길 기원합니다. "무슨 일이냐?" 하시는 예수님께 눈과 귀, 마음을 활짝 열고 우리 마음을 쏟아놓읍시다. 그분께서 격려하시고 도와주시고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도 역시,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1년 4월 9일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0) | 2021.04.09 |
|---|---|
| 2021년 4월 8일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0) | 2021.04.08 |
| 2021년 4월 6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0) | 2021.04.06 |
| 2021년 4월 5일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0) | 2021.04.05 |
| 2021년 4월 4일 주님 부활 대축일 낮미사 (0) | 2021.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