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이야기하십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요한 20, 15)
빈 무덤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지만 마리아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녀가 경험한 바로는, 예수님이 사흘 전에 처참히 죽임을 당하셨고, 바로 이 곳에 묻히셨습니다. 그러니 시신은 반드시 여기에 남아 있어야 했지요.
"모셔 가겠습니다."
때로는 사랑이 사람을 대책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가냘픈 여인이 성인 남성의 시신을 모셔가겠다니요. 적당한 무덤자리라도 봐 두었단 말일까요? 게다가 예수님은 사형수의 신분이니 로마의 행정 절차로 보나 종교 기득권층의 적대감으로 보나 그리 쉬운 일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어처구니 없는 마리아의 말에서 참으로 진한 사랑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 시신마저 잃은 공허함이 얼마나 애틋하고 절절하면 저리 말할까 싶지요. 성토요일까지의 우리 마음도 그랬으니까요.
"마리아야!"(요한 20,16)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부르십니다. 살아 생전에 그녀를 부르시던 그 톤과 온도였을 테지요. 아마도, 아니 분명히, 예수님께서 누군가를 부르실 때는 듣는 이에게 저마다의 울림이 있었을 겁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요한 10,3) 동행하니까요.
"마리아야!"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부르시는 순간, 마리아 안에서 대전환이 일어납니다. 육을 지니신 인간 예수님을 사랑했고 그분 인격을 흠모하던 마리아가 지금 그분 육신의 흔적을 찾는 건 너무 당연하지요.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그런 마리아에게 새로운 영혼의 지평을 열어 주십니다. 익숙했던 이름을 새로이 불러 주심으로써!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요한 20,17)
마리아의 사랑은 육에서 영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지금 그분을 붙잡는 건, 반가움과 기쁨, 안도감 등 사랑의 다른 표현이 되겠지만 영의 사랑은 그 차원을 뛰어 넘어야 하니까요.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요한 20,18)
마리아는 실제로, 결과적으로, 진실한 바람대로 예수님을 "모셔 갔습니다!" 시신을 모셔 가겠다고 결심한 그녀가 예수님의 현존과 뜻을 모셔 간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메시지를 생생하게 제자들에게 전한 것이니 그렇습니다.
"마리아야"
예수님께서 부르신 순간 마리아는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건너갑니다. 육의 공허와 아쉬움, 슬픔과 절망에서 영의 충만함과 기쁨, 희망에로 들어갔지요. 그녀는 더 이상 스승의 핏기 없는 육신을 붙들고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으로 예수님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모셔가 전하는 진정한 사도가 된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가 이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사도 2,36)
베드로는 유다인들에게 그들이 믿는 성경에 근거해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고 선포합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메시아를 자기들 손으로 처단한 사실에 당황하고 마음 아파하며 어찌 해야 할지 묻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
회개와 세례, 죄의 용서로써 하느님 백성은 성령을 받을 준비를 갖춥니다. 성자 예수님은 떠나가셨지만 이제 성령께서 이 세상에 현존하시며 성부의 사랑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일깨워 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류는 영의 존재로 초대받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됨은 족보와 율법에 의거한 육의 삶에서 회개와 세례를 통한 영의 삶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빈 무덤가에서 찾는 예수님은 어떤 모습인지요. 육의 프레임 안에 그분을 가두지 않는다면 언제든 그분이 부르실 때 흔쾌히 응답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야!" "요셉아!" "바오로야!" 혹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벗님의 이름을 부르며 느닷없이 나타나시더라도 그분을 영의 사랑으로 알아볼 수 있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도 주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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