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로운 존재가 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마르 16,4)
충실하고 거룩한 여인들이 안식일 다음날 무덤을 찾아갑니다. 예수님 시신에 바를 향유를 미리 사서,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에 다다릅니다.
'열린 무덤'
그런데 무덤 입구를 막았던 커다란 돌이 치워져 있습니다. 장례날 군사들이 힘껏 봉인했던 무덤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그 돌은 산 이와 죽은 이를 갈라놓는 돌, 어지간한 힘으로는 쉽게 밀어내기 어려운 거대한 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모셔진 공간과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공간을 구분하는 장벽이기도 했지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마르 16,6)
놀라서 무덤에 들어간 여인들은 하얗고 긴 겉옷을 입은 젊은이를 보고 놀랍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태오나 요한과는 달리 "천사"라는 언급을 아낍니다. 그 젊은이는 그녀들이 찾는 예수님이 무덤 안에 계시지 않는다고 전합니다.
'빈 무덤'
무덤은 열려 있고, 또 비어 있습니다. 더 이상 이곳이 그분 자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순간을 목격한 증인은 없습니다. 그저 열려 있고, 비어 있는 무덤을 발견한 이들과, 그들이 듣고 만난 분에 대해 전해진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의혹이 증폭되지요. 그들은 제자들이 스승의 시신을 훔쳐간 뒤에, 생전에 말씀하신 '사흗날의 부활'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치부합니다. 누구도 그 순간을 보지 못했으니 저마다 생각한 대로 믿을 뿐입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제5독서>에서는 주님 "말씀"의 속성을 이야기하십니다.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마는 말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차 말씀하신 수난과 죽음, 부활의 예고는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결국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믿음으로 증명되는 신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거나, 천사의 말을 믿거나, 예수님을 만난 이들의 말을 믿거나... 이렇게 부활은 '믿음을 기초로 확장되는 하느님 나라의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나타나셔서 제자들 앞에서 음식을 드시기도 하고 가르침을 주기도 하셨지만 끝내 믿지 못한 제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복음사가는 감추지 않습니다.(마르 16,14 참조) 그러니 여러 사람을 건너서 전해 전해 들은 이들이야 어떠하겠습니까...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에제 36,26)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그분의 함께 다시 살아나리라고 믿는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의 낡고 완고하고 불결한 자아는 주님께서 넣어 주신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아 새 생명으로 변모됩니다. 이 세상 끝날 모든 죽은 이들과 함께 누리게 될 부활의 은총은, 그분 부활을 믿음으로써 오늘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도 누릴 수 있는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믿음으로써 우리가 얻을 새 창조는 전혀 새로운 무엇이 아닐 겁니다. 이미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어내실 때, 보시며 흡족해 하셨던 그 충만하고 온전한 아름다운 평화의 상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새 창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죄에 물든 욕망과 교만으로 어둡고 음습한 무덤 안에 갇혀 버렸던 병들고 낡은 자아 앞에 비로소 그 커다랗고 육중한 돌이 치워집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거센 추격을 벗어나 마른땅은 밟고 바다를 건넌 것처럼(탈출 14,22 참조), 믿는 이 역시 죽음과 생명의 경계 장벽을 성큼 건너서,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네 영광을 남에게 넘겨주지 말고, 네 특권을 다른 민족에게 넘겨주지 마라."(바룩 4,3)
<제6독서>에서 바룩 예언자가 외칩니다. 더 이상 원수들의 땅, 무덤 속에서 서럽게 늙어가지 말고 하느님의 길에 들어서서 평화를 되찾으라고, 하느님께 속한 그분의 백성으로서의 영광과 특권을 놓치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믿음으로 얻은 새 피조물의 정체성을 단단히 붙잡고 나아갑시다.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누릴 부활의 열매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기쁨과 평화, 사랑과 연민이 빈 무덤을 가득 채우고, 우리는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룩 예언자의 환호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행복하구나!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알고 있다."(바룩4,4)
주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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