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4월 1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dariaofs 2021. 4. 1. 05:58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물과 피로 우리를 씻어 주시는 주님 손길을 감지합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갈 때가 된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사랑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 "끝까지"라는 단어는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시간만 의미하지 않지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에 이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세상의 끝날까지로 확장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우리 역시 "끝까지"의 수혜자입니다.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요한 13,7)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베드로가 불편해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어디 이 일뿐이겠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내온 시간 동안 그들이 그분의 마음과 행위를 제대로 이해한 적이 얼마나 있었던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 안에서 느닷없이 마주한 사건과 사고, 추락과 실패, 모호함과 불확실성 앞에서 이를 허락하신 주님의 뜻을 도무지 알 수 없어 망연자실 무지의 늪에 빠져든 때가 종종 있었지요.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당장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눈물과 슬픔의 포장지가 벗겨지면서 그 안에 들어찬 사랑의 선물을 발견하고 깨닫는 순간 또한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솔하고 섣부른 판단을 멈추고, 주님의 뜻이 우리에게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 기다림은 그저 수동적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가능한 적극적 의지의 표현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스라엘의 파스카 순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탈출 12,13)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린양의 피를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라고 명하십니다. 당신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치면서 지나가실 때 그 피가 곧 이스라엘 백성임을 증명하는 표가 될 것이니까요.

제2독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는 대목입니다.

"이는 내 몸이다."(1코린 11,24)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1코린 11,25)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주신 몸과 피는 그분의 사랑입니다. 이제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 곁으로 가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이 지상에서 당신의 현존 가운데 살아가도록, 또 그들도 자신의 생명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성체의 삶을 이어가길 바라시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십니다. 이 극진한 사랑은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고 확장되면서 우리 모두가 하나의 몸을 이루게 해 줍니다.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은 일차적으로 우리 몸의 가장 낮고 더러운 발을 물이라는 매개를 통해 씻어 주셨습니다. 이를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보면, 당신의 뜨겁고 열렬한 사랑의 피로 우리의 가장 죄스럽고 불충한 부분을 씻어 정화해 주신 것까지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영혼을 닦아 준 이 피, 우리에게 묻히신 이 피야말로 구원을 보증합니다.

"나에게 당신은 피의 신랑입니다."(탈출 4,25)
문득 모세가 소명을 받은 뒤,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미디안을 떠나서 이집트로 들어갈 때 겪은 위기의 순간이 떠오릅니다. 그때 모세의 이방인 아내 치포라가 한 고백이지요.

"피의 신랑"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정배, 신부인 우리 모든 신앙인에게 그분은 당신 피로 우리를 살리신 피의 신랑이십니다. 그분은 사랑이고 희생이며 완전한 자기 증여의 표지로 당신 피를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는 지금 그 뜨거운 사랑의 시간, 사랑의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 만찬 저녁 미사부터 시작되는 파스카 성삼일은 우리 구원의 가장 거룩하고 의미 깊은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동행하는 이 때를 더욱 경건하고 거룩하게 보낼 수 있도록, 스스로는 물론 타인에게도 삼가고 배려하며 지내면 좋겠지요. 복잡하고 분주한 일상 안에서도, 주님 사랑에 정향하고 집중하며 구원을 뼛속 깊이까지 체험하는 은총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기도로 함께하겠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