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맞이하실 영광의 결정적 순간 앞에서 제자들이 각자의 방향을 향하고 있음이 보입니다. 영적 여정 안에 있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지요.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요한 13,30)
이 대목에서는 빛과 어둠의 대비가 극명합니다. 예수님을 배반할 유다는 빛의 공간인 주님 현존 장소를 떠나 밤의 현실로 들어갑니다. 그가 다가올 주님 영광의 순간을 위해 쓰인 아픈 손가락일 수도 있습니다. 그의 판단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예수님께서 그를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 여쭈어 보게 하였다."(요한 13,24)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요한 13,37)
이 일화만 보면 예수님의 수석 제자인 베드로는 그분과 그다지 친밀한 밀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는 듯 보입니다. 몹시 궁금하면서도 직접 묻지 못하고 한 다리를 걸치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그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 목숨을 걸 수 있다고 자신하지요. 이 피상적 호언장담은 고의적인 허세라기보다 아직 자신을 잘 모르는 착각에 가까울 겁니다. 어쩌면 예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믿는 것 같아 보이지요.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요한 13,36)
사람마다 때가 있고 자기에 알맞는 고유한 자리도 있지요. 베드로의 때는 회피와 추락과 통회의 용광로를 거쳐 금처럼 정련된 뒤, 그제서야 빛이신 주님을 담아 그 빛을 내는 도구로 거듭나게 됩니다.
"나중에는"
그의 때와 가능성을 너무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언제까지라도 그를 기다리실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허공에 흩어질 맹세라도 그분께는 귀합니다. 예수님은 부족한 우리 안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채 빛을 보길 기다리는 완성태를 관상하십니다. 그래서 늘 우리를 기대하고 기뻐하십니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 물었다."(요한 13,23.25)
예수님께서 제자들 중 누군가에 의해 당신이 팔아넘겨지신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으로 제자들을 긴장시키십니다.
식탁에 둘러앉은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유독 예수님 곁에 더 가까이 있었던 듯합니다. 스승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니 그만큼 친밀한 관계였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물리적으로 사랑하는 이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는, 영적으로 보면 그분의 품 안으로, 그 뜨거운 심장 안에까지도 파고들어갈 수 있는 거리로 가늠됩니다.
감히 스승을 팔아넘길 이가 누구인지 다들 묻기조차 두려운 질문이 그 제자에게는 가능했나 봅니다. 베드로의 고갯짓에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묻지요. 이 제자와 예수님의 거리는 점점 더 친밀히 좁혀지고, 이윽고 예수님의 속내가 흘러나옵니다. 이 제자와 예수님의 일치는 멀지않아 보입니다.
제1독서는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입니다.
"모태에서부터"(이사 49,1.5)
예언자는 부르심이 모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반복해 이야기합니다. "모태"는 단순히 어머니의 태 안이라는 의미를 넘어 창조의 순간을 가리킵니다. 하느님과 주님의 종이 맺은 관계의 출발처럼 우리 모두가 하느님과 맺은 관계의 시작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모태에서 부르심을 받고 이름을 받아 세상에 나옵니다. 그런데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버렸다."(이사 49,4)고 탄식하는 순간도 지나야 합니다. 세상 눈으로는 처참히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인생일 수도 있지요. 참 예언자들도 그랬다고 성경의 갈피마다 증언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용광로, 그 광야를 거쳐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가지요. 근원을 향한 회귀입니다. 이 근원이 있어 우리는 스텝이 꼬이고 길을 잃어도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론 안개 속을 헤매는 듯, 때론 스스로 눈먼 이인 듯, 때론 온통 폭풍과 들짐승에 둘러싸인 듯 두려워도 다만 멈추지 않는다면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온전한 일치를 향해 그분 품으로 파고들 수 있습니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6)
그분에게서 나왔다가 온전히 그분에게로 돌아간 영혼, 온전히 자신이 됨으로써 그 자신이 평화가 된 이는 주님의 빛이 됩니다. 빛이신 주님과 하나되어, 빛이신 주님을 그대로 투영하는 빛입니다. 부족하고 죄인인 우리가 주님 안에서 빛이 되면, 세상은 그 빛을 보고 주님께로 나아와 구원의 길로 들어설 것입니다.
"더 다가가 물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한 것처럼, 모호하고 막막하며 두려운 순간일수록 주님 가슴 깊이, 더 깊숙히 파고듭시다. 그리고 그분께 여쭙시다. 어떤 질문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여쭙는 모든 질문이 그분 심장을 두드리고 애간장을 뒤집어놓아 우리를 당신 안으로 와락 받아들일 자비를 흔들어 깨울 테니까요. 사도 요한처럼 예수님 품에 기대어 머무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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