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3월 28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dariaofs 2021. 3. 28. 05:49

성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미사의 복음은 꽤 깁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등장하지요. 수난 당하시고 죽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두 독서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이사 50,5)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인 제1독서의 대목은 수난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무죄하신 분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던 동족에 의해 처절히 모욕과 수모를 당하시지만, 바로 그 "사랑" 때문에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사랑을 포기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7-8)
강생도 하느님과 같으신 분에게는 엄청난 비움이고 낮춤일 터인데, 예수님은 거기에서 더 비우고 더 낮추시어 가장 치욕스런 십자가 형벌에 당신을 내어놓으십니다. 완전하고 충만하신 분께서 오직 하나, 사랑 때문에 당신의 생명까지 내려놓으신 것입니다.

이는 제사를 받으시는 하느님이시고 또 제사를 집전하는 영원한 대사제이시면서도 스스로 제단 위에서 살라지는 희생 제물이 되신 신비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이 이 순종으로 완성되었지요.

수난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예수님 편에 선 이들과 반대편에 선 이들로 나뉩니다. 우선 복음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여인들을 관상합니다. 그들은 그분의 장례를 위해 자신이 무얼 하는지도 모르면서 사랑이 시키는 일을 감행한 영의 여인들입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마르 14,8)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져와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붓습니다. 아직 가까운 장래에 닥칠 일을 상상조차 못하는 이들이 향유의 용도와 값어치에 놀라 그녀를 비난하고 나무라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그녀를 두둔해 주십니다. 지금 이 여인을 이끄는 힘이 하느님이심을,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는 말 없이도 감지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을 어디에 모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마르 15,47)
수난 복음 마지막 대목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묻힐 때, 이를 유심히 지켜보며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는 이들 또한 여성들입니다. 그들 역시 사랑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지요. 그 죽음이 하도 허무하고 무력해서 실망스러울 법도 한데, 추종자들마저 등돌리고 배반하고 외면한 사형수에게 끝까지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이들입니다.

버림받아 죽어가는 예수님의 벗이 되어준 이들은 더 있습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고 고백한 이방인 백인대장이나, 용기를 내어 "당당히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요청한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도 긴 수난복음 안에서 저마다 충실한 사랑을 증거하고 있지요.

반면 예수님의 사랑과 정성을 듬뿍 받으면서 그분 곁에서 양성된 제자들의 모습은 참 안타깝지요. 겟세마니에서 번민하는 예수님 뒤에서 졸고 있는 세 제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관계를 부인한 베드로, 달아난 제자들... 적대자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들을 예수님의 벗 범주에 넣어야 할지 퍽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한때 환호하던 입으로 십자가형을 외치는 군중, 고발하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기회주의자 빌라도, 조롱과 모욕을 서슴지 않는 군사들... 예수님을 둘러싸고 양심의 숙고 없이 악역에 몰두하는 이들 또한 복음의 구성원이고 세상의 일원이며 우리의 일면임을 부인하지 못하겠습니다.

말씀은 길고 슬픈 수난 이야기에 이처럼 많은 이들을 등장시키면서, 무엇보다 예수님께 주목하라고 초대합니다. 그분의 침묵과 비움과 낮춤을 사랑의 다른 표현으로 알아듣길 바라시면서요. 그리고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여인들도 조명하십니다. 제도와 신분에 연연함 없이 사랑 때문에 결단하고 움직이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입니다. 부족한 우리에게까지 열린 가능성이기도 하지요.

비장한 마음으로 성주간에 들어서는 우리에게 말씀은 누구를 바라볼지 결단하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 시선이 머무르는 바로 그 존재처럼,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는지, 사랑 때문에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지, 사랑 때문에 안전지대를 박차고 나설 수 있는지 물으시지요. 이번 한 주간이 그 답을 곰곰이 숙고하고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일어나 가자."(마르 14,42)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함께 가자고 부르시니, 힘내어 일어나 그분과 함께 나아갑시다.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함께 걷고 있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