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dariaofs 2021. 3. 25. 06:08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 구원을 위한 순종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마리아는 천사가 들려 준 잉태 소식에 놀라지만 이내 순종합니다. 율법을 익혀온 유다의 처녀로서 혼전 잉태로 벌어질 후폭풍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인데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제1독서서는 일찌기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을 언급합니다. 주님께서 몸소 주실 이 표징은 이스라엘 백성의 희망이었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통해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감추어진 신비였지요.

자신들을 이민족의 압제에서 구해 줄 메시아, 다윗의 영화를 되찾아 줄 번영의 메시아를 깨어 기다리는 여느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마리아 역시 그러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하지만 천사의 발현부터 처녀 잉태의 예고까지 마리아가 맞닥뜨린 현실은 이미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과정을 넘어섰기에 그녀는 놀라고 의문스럽고 두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두려움을 딛고 고백한 응답은 그저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하세요." 하는 식의 수동적 동의가 아닙니다.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분명히 끝을 맺지요. 이는 자신도 동의와 수용을 넘어 간절히 열망하고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이며 그래서 창조적인 순종입니다.

제2독서에서는 마리아의 순종을 통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순종을 이야기합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7)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율법에 따라 바치는 황소와 염소의 피를 원하지도 기꺼워하지 않으심을 아십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의례는 아버지께 대한 사랑과 열정과 진정성을 잃은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스스로" 아버지께 완전한 제물로 드리시는 데 기꺼이 순종하십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 10,10)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육화하심으로써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조건으로 시작하십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져 초능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동떨어진 신이 아니라, 육신을 취한 이로써 그 실존을 몸소 겪으며 성장하고 활동하다 죽으셨지요.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의 제사로 원죄의 상처로 허덕이는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순종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었기 때문이지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입니다. 은총, 기쁨, 주님의 현존이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는 우리의 현실이지요. 때로는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적 사건으로, 때로는 우리 각자의 죄와 나약함으로, 때로는 관계적 환경적 한계로 먹구름이 드리우고 안개에 싸여 정말 우리가 그런 사람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기도 하지만, 우리의 현실 맞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우리 각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맞게 건네시는 말씀에 귀기울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마리아와 함께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주체적으로, 적극적으로, 창조적으로 응답할 수 있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요. 대축일 함께 기뻐하며 기꺼운 순종의 행복을 아는 벗님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겸손과 순종으로 구원 사업에 협력하신 마리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