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참 예언자의 고독이 짙게 드리웁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요한 10,32)
예수님은 지금 죽음의 위협을 직접 겪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백성을 위해 베풀었던 모든 진리의 말씀과 선의의 기적들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 증명하는데도 유다인들은 믿기를 거부합니다. 그저 외면하고 경계하는 도를 넘어서 이제는 그분을 제거하려 들지요.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8)
예수님은 당신이라는 인간을 보지 말고 당신을 통해 일하시는 아버지의 업적을 보라고 하십니다. 그 일들이 곧 구원의 표징이니까요.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의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지요. 같은 이유로 예수님께 맞서는 이는 그분을 보내신 하느님과 맞서는 것이며, 예수님을 죽이려는 이들은 이 세상에서 창조주 하느님을 제거하려 드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악은 그런 이들을 좋아하고 가까이 합니다. 빛은 어둠을 이기기에 그들에게 눈엣가시같은 존재지요. 그래서 그들 힘을 빌려 빛을 없애면, 어둠인 자신들이 마음놓고 득세하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율법과 전통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어둠인 악과 야합해 빛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예수님과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기도가 들립니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예레 20,10)
상상하기조차 싫은, 참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고통의 정황입니다. 시편 저자 역시 이런 아픔을 "제가 믿어 온 친한 벗마저, 제 빵을 먹던 그마저 발꿈치를 치켜들고 저에게 대듭니다."(시편 41,10)라고 탄식한 바 있습니다. 이 슬픈 상황이 예레미야와 예수님에게 참 예언자의 운명으로 들이닥친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예레 20,11)
하지만 예언자는 그 고통 속에서 마냥 허우적대지 않고 반전의 심경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현존! 이야말로 예언자가 고달프고 슬픈 배척과 거부의 현실에서 달아나지 않게 해 주는 힘의 본질입니다. 예언과 가르침과 선포는 물론, 들숨날숨의 호흡 하나까지도 자신과 함께 계신 하느님 때문이기에 예언자는 투쟁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에레 10,13)
이 희망이 없다면 하느님의 작은 이들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이 희망 덕분에 예레미야는 울분을 터뜨리면서도 버티었고, 예수님께서도 끝내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무시와 억압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이들, 세상의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 약자를 위해 정의와 공정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기득권 세력에 무참히 공격받는 이들은, 이 세상 질서 너머로 영원한 생명과 행복, 정의가 기다린다는 희망으로 삶의 질곡을 견디어 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요한 10,40)
예수님께서 아버지와의 일치를 체험한 곳으로 물러가십니다. 세례 때 그곳에서 예수님은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하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셨지요. 소명의 발화점이고 영혼의 고향인 이곳에서 예수님은 앞으로 겪으실 참 예언자의 운명, 구원자의 운명을 위해 영혼의 전열을 가다듬으실 겁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머무르시면서 당신을 죽이려는 이들을 포함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이들을 끝까지 사랑할 힘을 가다듬으실 겁니다. 그 사랑이 소명의 근원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살다 보면 가깝고 신뢰하던 이들에게 등돌림과 배척을 당하고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쏟아부은 사랑에 거부와 조롱이 되돌아오기도 하지요. 그럴 땐, 복음 속 예수님처럼 각자의 소명이 시작된 자리로 돌아가 주님 안에 머무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깊어가는 사순절, 어느새 성주간이 지척입니다. 고독 속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으로 충만하신 예수님 곁에 꼭 붙어있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 힘내어 짙고 깊은 어둠의 시간을 묵묵히 걸어갑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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