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4월 4일 주님 부활 대축일 낮미사

dariaofs 2021. 4. 4. 05:45

오늘 미사의 말씀은 부활의 증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십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요한 20,1)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가로 간 시간적 배경을 서술한 이 문장 안에는 많은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사흘 전 예수님을 잃고 도성 구석구석으로 숨어버린 제자들의 마음, 사랑하는 이를 비극적으로 떠나보낸 여인들의 마음, 아드님의 죽음 앞에서 예전에 천사에게 들었던 구원자 잉태 소식을 떠올리는 성모님의 마음, 창조주를 잃은 모든 피조물의 마음... 분명 예수님은 부활하셨건만 아직 이를 모르는 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동이 트기 전의 어두움 상태입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간 마리아가 말합니다. 시신조차 사라져 버린 철저한 주님 부재의 상황 앞에서 인간의 한계는 "무지"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요한 20,8)
무덤에 다다른 두 제자 역시 모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들이 믿었다는 건, 그저 마리아가 전한 빈무덤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걸 확인으로 믿었다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합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요한 20,9)
말씀을 깨닫는 것은 인간 고유의 능력을 넘어섭니다. 말씀하신 아버지의 뜻과, 말씀이신 아드님의 순종을 성령께서 일깨워 주셔야 가능한 은총이지요. 비록 제자들이 그동안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여러 차례 듣기까지 했어도 그들은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 초입의 시간적 배경처럼, 빈 무덤 앞에서 제자들의 앎은 "아직 어두운" 상태입니다.

제1독서는 베드로의 설교 부분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사도 10,39)
베드로는 자신을 포함한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그분이 하신 일을 직접 본 증인임을 밝힙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사도 10,41)
그리고 부활하신 뒤에도 자신들에게 나타나셨다고 이야기하지요. 비록 그분의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전복되어 관계를 부인하고 도주하고 숨었지만, 부활하신 그분을 만나 그분과 먹고 마시면서 믿기지 않았던 부활의 현실을 직접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사도 10,42)
제자들의 무지와 배반의 흑역사는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증언과 선포의 소명으로 바뀝니다. 부끄럽지만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 엄청난 변화가 부활의 은총을 더 강력하게 보여 주니까요.

제2독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시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려면, 그 전에 이미 죽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으니, 우리는 그 죄에서 죽은 것입니다. 이 죽음이 우리를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게 해 줍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2)
물론 지상 순례길에 묶여 있는 동안 땅의 것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습니다. 먹고 살고 낳고 키우고 부양하고 성취하려면 땅의 원리와 완전히 별개로 살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부활의 은총으로 다시 살아나 "저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 하느님 나라와 영의 원리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사람은 땅에 살되 땅에 묶이거나 집착하지 않습니다. 똑같이 먹고 살고 낳고 키우고 부양하고 성취하면서도 땅을 딛고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지만 아직 마음속에 먼동이 트기 전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부활은 오늘 복음 속 제자들에게처럼 부활하신 분과의 만남, 들음, 만짐, 체험, 깨달음을 통해 점진적으로 열리는 신비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어제 부활 성야 미사 때 우리는 "예, 끊어버립니다!", "예, 믿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결단과 신앙을 비장하게 고백했지요. 비록 여전히 마음 안에 동이 트지 않았고 무지와 의혹의 빈 무덤 가를 떠나지 못한 상태라 해도 괜찮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각자의 때에 맞게 점진적으로 다가오시어 우리를 일깨우고 평화를 선사하실 것이고, 어둠이 짙을수록 그 변화의 폭은 엄청날 테니까요.

주님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과 평화는 감정을 넘어서는 은총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부활의 은총을 믿으며, 부활의 증인으로 불리웠음을 믿는 이는, 믿는 대로 행복할 것입니다. 여러모로 녹록치 않은 현실이지만, 믿음으로 복된 부활 대축일 되시길 기도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