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의 부활을 대하는 여러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마태 28,8)
천사에게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여인들이 그 소식을 전하러 서둘러 떠납니다. 두려움과 기쁨.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지요. 게다가 일생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을 자기 입으로 전해야 하는 메신저의 역할까지 부여받은 터입니다.
"평안하냐?"(마태 28,9)
그런데 진짜로 예수님이 마주 걸어오시며 말을 건네십니다. 평안하고요... 참, 그 험한 일을 겪고 죽으셨던 분이 당신을 사랑하던 이들의 처참한 고통을 모르실 리 없는데, 평안하냐고 물으시다니요...
예수님이 평안하신 겁니다. 혹독한 수난 여정을 건너 죽음을 받아들이신 뒤, 모두가 끝이라고 여기는 그 죽음을 이기고 이렇게 살아오신 예수님께서 평안하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흔히 죽음을 각오한 이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지요.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죽음에 짓눌리지 않는 힘을 자기 안에서 발견한 이는 담대하고 초연하며 평안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여인들의 두려움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먼저 그들을 다독이십니다. 초현실적인 사건은 으레 두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예수님과 함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언급하십니다. 그분의 구원 사명이 시작된 곳이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희망으로 전율했던 첫마음의 장소입니다.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고, 가난한 이들과 이방인이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한 곳입니다. 구원이 눈물과 피땀이 뒤범벅된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짐을 깨달은 곳이기도 하지요.
제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부활의 원리와 근거에 대해 설교합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사도 2,23)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사도 2,23)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사도 2,24)
먼저 이 엄청난 부활 사건은, 성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과 예지였음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당시 재판권과 처형권을 가지고 있는 로마인의 손을 빌어 그분을 죽인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대로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죽음을 순종으로 받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지요. 이로써 생명과 죽음은 예수님 권능 아래 복종하게 됩니다. 이 모두를 이루신 하느님의 계획과 예지야말로 부활의 원리입니다.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사도 2,30-31)
이스라엘 사람이면 누구나 다윗을 성왕으로 여겨 믿고 자랑합니다. 그 다윗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편에서 이미 부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고, 베드로 사도는 유다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부활의 근거를 성경 안에서 찾아 짚어 줍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마태 28,13)
아마도 이것이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믿고 싶은 바일 겁니다. 그들에게 부활 사건은 기존 종교 질서의 전복과 직결되니, 어떻게든 자신들의 주장을 지켜야 했을 겁니다.
사실 마태오는 '경비병들이 천사의 발현을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라쳤다'(마태 28,4 참조)고 앞 대목에서 언급했지요. 그러니 경비병들은 예수님 부활 사건의 직접 증인입니다. 하지만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기득권을 위해 진실을 은폐했듯이, 경비병들은 "많은 돈"을 위해 입을 닫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이렇듯 각자의 이익을 위해 각색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벗님!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어떤 의미를 주는지 숙고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배층들이나 경비병들처럼 기득권과 이득 앞에서 진실에 눈감지 않고, 첫마음으로 돌아가 기득권의 경계 밖에서, 가난과 불안정한 현실에 발을 딛고, 예수님과 함께 새 복음화의 길에 헌신할 열정을 일으키는지요.
진정 우리가 예수님 부활의 증인으로 변모되길 바랍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안고 갈릴래아로 달려가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1년 4월 7일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0) | 2021.04.07 |
|---|---|
| 2021년 4월 6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0) | 2021.04.06 |
| 2021년 4월 4일 주님 부활 대축일 낮미사 (0) | 2021.04.04 |
| 2021년 4월 3일 토요일 파스카 성야 (0) | 2021.04.03 |
| 2021년 4월 2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0) | 2021.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