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사랑을 배웁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10)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사랑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생경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신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님 사이에 흐르는 유대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지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주님 사랑에 머무르는 이는 사랑에 흠뻑 젖어들어 사랑에 물들어 갑니다. 사랑이신 주님을 닮아가다가 그 자신이 사랑이 되지요. 인위적으로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사랑이 그에게서 자연스레 흘러나옵니다. 사랑 안에 있는 영혼은 사랑밖에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기쁨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누군가 사랑하고 있다면 침울하거나 부정적이기 어렵지요. 진짜 사랑이라면 그렇습니다. 혹 자기중심적이거나 계산적인 욕정을 사랑이라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사랑의 허울만 그럴듯하게 흉내낸 것일 뿐이어서 진정한 기쁨을 자아낼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사랑 자체이시어서 기쁨의 존재십니다. 아드님도 마찬가지시지요. 그 사랑이 실패만 거듭하는 듯 보이고 번번이 배척과 거부를 당하는 외짝 사랑이어도 그분에게서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결과로 성취를 가늠하지 않고, 이미 사랑한 만큼이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부 하느님도 기쁘시고,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 머무르시는 성자 예수님도 늘 기쁘십니다.
제1독서는 사도들이 신앙의 길에 들어선 이민족들을 위해 어떻게 그 사랑을 반영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었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사도 15,10)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할례 등의 전통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담대히 질문을 던집니다. 이 말에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한 개인적, 공동체적 성찰이 들어 있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가르친 대로 열심히 하느라고 했지만 그것이 늘 버겁고 힘겨웠던 겁니다. 지키느라고 지켰지만 늘 부족과 미완의 불안, 그리고 죄의식을 안고 살았던 게지요. 베드로는 이를 포장하지 않고 자신의 심정에서 출발해 진솔히 토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길을 받아들여 새롭게 성부, 성자, 성령과의 만남을 시작하는 이들이 굳이 길을 되짚어 죄의식과 불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도 이를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하지요. 그 이유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사도 15,19)
이제 야고보 사도가 구약 예언에 비추어 하느님의 뜻을 정리합니다. 중요한 건 이론이나 전통보다 누구나 더 원활하고 기쁘게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기존의 기득권이 텃세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사도 17,9)신 하느님의 사랑의 의중을 존중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네."(영성체송)
주님은 유다인만을 위한 신이 아니고, 구원 역시 한 민족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모든 이를 위한 것이고 구원을 위한 성자의 희생제사도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출신과 인종, 배경과 지위, 가진 바가 우리와 다른 이들 역시 주님 사랑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진정 기쁘고 감사하다면, 우리는 사랑하고 있는 것 맞습니다. 이 기쁨은 사랑이신 주님과 닮아가는 이에게 베푸신 은총이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사랑이신 주님께 머물러 사랑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주님의 기쁨을 공유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무리 작고 미소해 보이는 사랑이라도 모든 사랑은 하느님을 담고 하느님을 닮아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하답니다. 사랑이 되어 가는 벗님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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