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되,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 나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길을 알려 주십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 15,1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영의 세계와 구분되는 영역일 겁니다.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성령의 인도에 마음을 여는 이는 세상의 지배 아래 매여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세상과 별개로 살아갈 수는 없지요. 이천 년 전 제자들도 그랬고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려고 돈과 권력을 탐하며 불법과 불의도 마다 않고 달려가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는 이에 철저히 역행합니다. 가진 바를 나누고, 이웃을 섬기며, 약하고 가난한 이들 안에서 주님을 발견하고, 스스로 가난을 택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니까요.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이 여기에 계시니까요.
그러니 세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나 신자들을 불편해 합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발 맞추지 않으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의심과 무시의 눈초리로 보기도 하고 심지어 박해까지 일삼지요.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한 15,21)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 대해 세상이 저지르는 미움과 증오의 이유를 "무지"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하느님도 모르고, 구원을 위해 아들을 보내신 사랑도 모르니 그런 것이라고 여기시지요. 만일 세상이 아버지와 그분의 사랑을 알았다면,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고귀한 존재로서 응당 아버지를 섬기고 아드님을 사랑했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끝까지 그들이 지닌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거룩함을 믿어주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바오로의 선교 여행이 어떤 원동력으로 이루어지는지가 드러납니다.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베풀었다."(사도 16,3)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다."(사도 16,4)
사도행전 저자는 이방 지역에서 바오로가 행한 이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합니다. 전통이라는 예민한 쟁점에 대해, 그 고장의 유다인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누구에게는 할례를 베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기로 한 예루살렘 회의의 규정을 알려 주지요.
이는 바오로의 사명이 단 하나의 목적, 구원을 향하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일 겁니다. 바오로는 자신의 이러한 모순처럼 보이는 선교 방식에 대해 그의 서간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합니다. "유다인들을 얻으려고 유다인들에게는 유다인처럼 되었습니다. ... 율법 밖에 있는 이들을 얻으려고 율법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율법 밖에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9,19-23 참조)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틀을 넘어섭니다. 그가 유다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들이 무지를 깨고 비로소 알게 된다면 그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전통과 관습, 기득권과 평판이라는 세상의 틀을 과감히 뛰어넘는 그의 원동력은 복음이지요. 그렇다면 그는 저마다 상황이 다른 선교 현장에서 어떻게 식별을 하고 방향을 잡았을까요?
"성령께서 막으셨으므로"(사도 16,6)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사도 16,7)
사도 바오로와 그의 동료들은 철저히 성령께 의지해 나아갑니다. 그들은 모든 일을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의탁하고 순중하여 그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식별하며 움직였습니다. 막으시면 멈추고 열어 주시면 담대히 발걸음을 옮겼지요.
세상의 방식으로 인간적 기대와 욕심이 앞섰다면 계획이 틀어진 것을 불편해하고 고집을 부려 강행했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순히 따릅니다. 그들은 복음 선포의 주도권을 오로지 성령께 일임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세상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도록 잘 가꾸어 나가며 사랑하고 돌보아야 하는 터전임이 분명하지만, 우리를 끌어당기는 세상 논리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세상은 크고 강하고 높고 많은 것을 추구하느라 작고 약하고 낮고 미소한 것을 착취하고 무시하며 소외시키기 일쑤니까요. 거기 하느님이 계심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무지"한 세상이 하릴없이 지배당하고 있는 물질 논리와 힘의 논리는 선하고 좋으신 사랑의 하느님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더라도 세상과 야합하지 않고 성령께 이끌려 살아갈 때 유지됩니다. 물론 거센 세속의 물살을 역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거고요, 주위에서도 그런 우리가 불편해서 그냥 대충 살라고 끌어내리기도 할겁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해 나아가는 영의 사람들인 것을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의 사람으로서 사랑과 겸손, 나눔을 통해 얻는 평화와 행복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선물입니다. 성령께 마음을 활짝 열고 순종하며, 복되고 복된 기쁨을 누리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소유한 영의 사람들인 벗님을 이렇게 만나고 함께 나아갈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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