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8월 19일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dariaofs 2021. 8. 19. 05:27

오늘 미사의 말씀은 인간이 하느님과 얼마나 엇박자를 내며 살아가는지 보여 주십니다.

"주님의 영이 입타에게 내렸다."(판관 11,29)
제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암몬 자손들에게서 구한 판관 입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주님의 영이 내리자 곧바로 암몬 자손들과 싸우러 나섭니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 주신다면 ... 저를 맞으러 제 집 문을 처음 나오는 ...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판관 11.31)
그런데 입타는 막상 암몬인들을 마주하자 자신에게 현존하시는 주님의 영만으로는 불안했는지 불특정 인물의 목숨을 볼모로 주님께 조건부 서원을 합니다.

자신의 희생도 아니고, 종의 목숨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친지의 생명일 수도 있는 무모한 봉헌이 하느님을 움직일 거라 믿은 걸까요? 이는 신의 마음을 사기 위해 인신 제사가 횡행했던 당시 이교 풍습의 잔재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은 존재지만 그의 하느님관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었고 신뢰도 빈약했습니다.

"아, 내 딸아! 네가 나를 짓눌러 버리는구나. 바로 네가 나를 비탄에 빠뜨리다니!"(판관11,35)
그런데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금의환향할 때 그를 가장 먼저 맞으러 나온 이는 그가 사랑하는 외동딸이었습니다. 입타는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 옷을 찢으며 탄식하지요.

그런데 그의 절규를 들어 보십시오. 그는 무모하고 경솔하고 불의한 조건으로 서원한 자신을 뉘우치기보다, 기쁨에 차서 앞장서 아버지를 맞으러 나온 딸을 탓합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를 그는 여전히 모르는 듯하지요. 혹 종이나 노예가 나왔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제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하였다."(판관 21,25)
판관기의 마지막 구절처럼, 입타 역시 불완전한 믿음과 자기 식대로의 신심으로 오히려 커다란 비극을 겪게 되었지요. 하느님께서 특별히 불러 주신 그마저도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고 믿음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으니 보통 사람은 어떠했을지요...

복음은 하늘 나라를 혼인 잔치를 베푼 어느 임금으로 비유합니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마태 22,8)
임금이 혼인 잔치를 열었지만 초대받은 이들은 관심이 없거나 종들을 때리고 죽이며 적대감까지 표출합니다. 기쁘고 흥겨워야 할 잔치가 폭력으로 얼룩지고 말게 되지요. 임금은 자신의 부르심이 제대로 호응받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임금은 오해받고 거부 당하는 하느님의 얼굴입니다.

일찍이 초대받은 이들은 혼인 잔치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이 성자 예수님을 배척하면서 구원의 길에서 스스로 벗어나려는 것과 비슷하지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부르신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입니다.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마태 22,12)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아무나" 데려오게 하자,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잔치집을 채웁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번에는 혼인 예복입니다.

혼인 예복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가난이나 무례함의 의미라기보다 혼인 잔치에 참여할 본질적인 자격을 가리킵니다. 새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는 새 계약의 잔치상에 참여하려면 성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신앙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지요.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
비유 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듯, 누구에게나 부르심이 선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가 봅니다. 사람이 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 존재여서 그럴까요?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그분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잘 모르니 제 식으로 넘겨짚어 입타처럼 오히려 화를 부르기도 하고 유다인들처럼 옛 것을 고집하느라 새 계약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함께하고 싶으신 하느님과, 그 마음을 몰라주는 인간의 불협화음은 이렇듯 구원 역사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복음 환호송)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부르고 또 부르십니다. 번번이 거절 당하시면서도 지치지 않고 부르시는 이유는 당신과 함께하는 길이 영원한 생명이고 행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화답송)
우리가 받은 부르심이 선택으로, 또 선택이 구원으로 완성되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신뢰와 믿음을 예복으로 입어야 합니다. 그분의 부르심과 선택, 사랑과 자비, 구원을 믿고 그분께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분과 우리 각자가 써나가는 구원의 역사에는 제2, 제3의 조건부 보루는 없어야 합니다. 우상으로 가는 퇴로는 반드시 차단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알아드리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은총으로 주신 믿음을 충실히 가꾸어 나가다 보면 우리 모두 언젠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화답송)
우리의 환성을 듣고 기뻐하실 주님이 눈에 선합니다. 그분과 함께 우리는 비로소 행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