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무릇 높은 사람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제1독서는 이방여인 룻이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된 일화를 발췌해 들려 줍니다.
"네 남편이 죽은 다음 네가 시어머니에게 한 일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고향을 떠나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겨레에게 온 것을 내가 다 잘 들었다."(룻 ,11)
이삭이라도 주워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들에 나간 룻이 "우연히" 보아즈의 밭에 이르게 되고, 보아즈는 룻에게 커다란 호의를 베풉니다. 이방인인 자기를 친절히 대하는 보아즈에게 룻이 겸손히 까닭을 묻자 보아즈는 룻의 사연을 "다 잘 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하지요.
보아즈는 나오미와 룻에게는 히브리말로 '고엘', 즉 구원자 의무가 있는 친족입니다. 한 가족의 가장과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서 경제적인 지원이나 살해에 대한 복수, 혹은 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요.
나오미와 룻의 경우에는 보아즈가 룻과 혼인하고 아들을 낳아서 이스라엘 가문에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들이 두 여인의 노후도 책임질 수 있습니다.
"내가 다 잘 들었다."
지역의 유지이고 재산가인 보아즈가 이미 룻의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기근으로 고향을 떠났다가, 기구한 운명을 당한 채 베틀레헴으로 되돌아온 두 여인 중 하나는 노인이고 하나는 이방인이니, 친족으로서 안타까운 연민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그는 자기 겨레와 부모를 두고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의 하느님 날개 밑으로 들어온 룻을 기특하고 고맙게 생각한 듯 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기려지기를 바랍니다."(룻 4,14)
룻은 보아즈와 혼인해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이가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이지요. 보아즈가 품었던 가엾이 여기는 따뜻하고 관대한 마음이 구원 역사를 잇는 다리를 놓습니다. 세상 어디건, 어느 시대건 하느님의 마음을 품은 이들을 통해 하느님 구원의 역사는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구원자 제도를 가장 완전하게 실천하신 분은 다름아닌 예수님이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민낯을 군중과 제자들에게 드러내십니다.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마태 23,4)
예수님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즉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던 당시 종교 기득권자들이 스스로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지는 않으면서 많은 규제와 복잡한 조건으로 오히려 백성들의 어깨를 더 무겁게 한다는 사실을 직관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백성을 가엾이 여기고 돌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고, 보아즈처럼 가난하고 기댈 곳 없는 이를 측은히 여기고 배려하는 연민을 지니지 못한 탓이겠지요. 짐짓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행동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 찬사받기만을 바라는 그들은 예수님 눈에 위선자에 불과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11)
섬기는 이는 타인의 짐을 대신 져 줍니다. 고통의 무게를 덜어주고 나누며 함께하지요. 섬기는 이는 그를 가엾이 여기는 하느님을 대신해 그에게 손을 내미는 존재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고엘 제도가 혈연과 친족 관계 안에서 작동했다면, 예수님은 이를 사랑과 연민의 의무로 방향지어 주셨습니다.
"내가 다 잘 들었다."
우리 구원자 주님께서 다 잘 듣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짊어진 상처와 고통의 무게를 헤아리시고 경청하시며 마음 가득 연민과 자비를 품고 계십니다. 그분은 저 위 높은 곳에서 이래라 저래라 손가락질로 평가하고 명령하시지 않고, 가장 아래, 우리보다 더 아래로 내려와 우리를 섬기며 짐을 대신 져 주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사랑을 말씀하시고 그 사랑을 실천하시는 주님께서 다 잘 듣고 계시니 우리 앞에 놓인 삶이 아무리 어렵고 지치고 버거워도 실망하지 말고 힘 내어 나아갑시다. 그리고 그분처럼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사랑이 되어 갑시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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