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며 공무(公務)의 의미를 지닌 백성에 대한 봉사를 일컫는다.
평신도라는 개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데 신약에서는 하느님의 백성, 즉 세례 받지 않은 하느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과는 반대로,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1베드로 2,10).

따라서 전례라는 말은 공동체의 모든 전례적 집회를 의미한다.
즉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선포와 구원 효력을 가져다 주는 표징으로 성령을 통해 신자들에게 파스카 신비에 참여를 허락하신다. 그리고 전례는 구원받은 인간들이 성부께 감사하며 찬미의 응답을 드리는 모든 전례적 집회를 뜻한다.
그러므로 전례는 우선적으로 공동체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의 행위,
즉 우리 공동체에 대한 하느님의 봉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칭하는, 전에 빈번히 사용된 의식(儀式)이라는 개념 또한 바로 하느님에 대한 예배를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지 전례의 본질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전례에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표징을 통하여(참조: 23장) 우선 구원을 가져다주시면서 활동하시고,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인간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감사하고 찬미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응답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대화로 바꿔 말할 수 있다.
하느님께로부터 인간에게로, 또한 인간으로부터 하느님께로. 그래서 전례에서는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인 표징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각기 그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머리와 그 지체들이 완전한 공적 예배를 드린다”(SC, 7).
전례의 이 이중 성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전례 헌장』의 많은 부분에서, 또한 최근 20년간의 전례 개혁 기록 문서의 보다 자세한 표현에서 발견된다. 그러한 표현들에서는 보통 하강적이며 구원적인 양상이 우선적으로 언급된다. 이것은 애초부터 전체 구세사와도 상응한다.
주도권은 언제나,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 뜻에 따라 품위 있게 응답할 수 있도록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있다. 따라서 전례란 말씀과 응답이며 하느님의 주심과 이에 응답하는 드림이다.
전례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간의 계약은 항상 새롭게 현실화된다.
전례의 양 성향 중에서 구원적 – 하강적 성향은 무엇보다도 성사와 성경 봉독으로 실현되고, 인간에게서부터 하느님께로 상승하는 성향, 즉 의식(衣食)적 양상은 주로 기도와 성찬례(이 의식이 희생 제사인 한)에서 실현된다.
그렇더라도 그때마다 나머지 다른 한 면이 결여되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러므로 성사들은 그저 단지 그 테두리 내에서만 기도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도 가장 깊숙한 내면의 핵심에 있어서는 기도이거나 아니면 세례 때의 신앙고백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부분적으로, 무엇보다도 중세로부터 물려받은, 오랜 시간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전례에 대한 법률적 이해로 인해 늘 모호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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