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8월 29일 다해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dariaofs 2013. 8. 29. 00:30

 

                                                                 (마르 6,17-29)

 

 

<예언자>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마르 6,17-18)."

 

복음서 저자들은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혼인을 비판했기 때문에

헤로데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회개를 선포하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푼 일에 대해서는

박해를 받지 않았음을 뜻하는데, 혹시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냥 세례를 베푸는 활동이나 하지 왜 왕의 사생활을 비판해서 죽음을 자초했는가?"

라고 요한을 탓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말은, '종교인은 종교 활동만 하면 되고 세속의 일에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라는 주장과 같습니다.

또는 "비판하더라도 왕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게 적당히 잘 말할 것이지

그렇게 노골적으로 비판해야 했는가?" 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뱀처럼 슬기롭게'(마태 10,16)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어리석었다고, 또는 융통성이 없었다고 요한을 비난하는 말이 됩니다.

 

헤로데의 혼인을 비판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다윗 왕의 죄를 꾸짖은 나탄 예언자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주님께서 나탄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나탄이 다윗에게 나아가 말하였다(2사무 12,1)."

나탄 예언자가 다윗 왕의 간통죄와 살인죄를 꾸짖은 것은

자기 생각으로 한 일이 아니라 주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한 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를 비판한 것도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말하라고 명령하신 대로 말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예레 1,7)."

온 세상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는 종교의 일과 세속의 일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신앙인들에게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에게 내립니다.

그러니 예언자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그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박해를 받고 죽더라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게 바로 예언자의 사명이고, 또 예언자의 숙명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예레 20,9)"

예언자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그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예언자는 자기 살 길을 마련할 여유도 없고,

융통성 같은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만일에 상대방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듣기 좋게 표현을 바꾸려고 하다가는 하느님의 말씀을 변질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한 글자도 덧붙이거나 빼거나 바꿀 수 없고,

말씀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만 하여라(민수 22,20)."

 

모든 신앙인은 각자 한 사람의 예언자로서

선은 선이라고, 악은 악이라고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7)."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관심 갖지 않고, 외면하고, 침묵을 지킨다면,

그것은 신앙인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혼자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악을 악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복음만 선포한다면

그것은 복음을 제대로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선포하면서 '회개'를 빼놓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라고 말하려면 먼저 악을 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인의 예언직 수행은

언론인들이 언론인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제대로 사명을 수행하는 언론인은 하느님의 예언자와 같습니다.)

권력자의 옳지 않은 행동을 옳지 않다고 비판한 예언자 요한은

양심적인 언론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를 죽여 그 입을 막는다고 하느님의 말씀이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을 탄압한다고 진실이 감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 내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으니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이사 45,23)."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