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12월 28일 가해 (죄 없는아기 순교자들 축일)

dariaofs 2013. 12. 28. 00:30

 

 

                                                                    (마태 2,13-18)   

 

 

<억울한 아기들>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마태 2,16)."

 

별의 인도를 받아서 예루살렘까지 온 동방 박사들은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라고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마태 2,2).

아마도 그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그렇게 물어보면서

예루살렘 시내를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헤로데는 '유다인들의 임금'이 새로 태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의 왕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고,

미리 그 위협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가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여러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별은 동방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곧장 인도하지 않고

예루살렘까지만 인도하고 모습을 감추었을까?

동방 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바로 갔다면 아기들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요셉은 아기가 있는 다른 집에 말을 해주어서

함께 피신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을까?

왜 하느님께서는 성가정이 이미 베들레헴을 떠났다는 것을

헤로데에게 알려주시지 않았을까?

아니, 그 전에 헤로데의 살인을 막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느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까?

 

아기들은 (아기들의 부모들도) 모두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그러니 예수님을 믿은 것도 아니었고,

자기가 (또는 자기의 아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의 아기들은 '죄 없는' 아기들이면서 동시에

'억울한' 아기들입니다.

 

우리는 별이 왜 동방 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는지 모릅니다.

그 일이 메시아의 탄생을

유대 당국이 공식 확인하게 된 결과로 이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문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다른 집에 말을 안 하고 그냥 피신한 것은 아마도

다른 집에 연락할 만큼의 시간 여유가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헤로데의 살인을 막으시지 않은 이유도 우리는 모릅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려고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마태오복음서 저자의 해석일 뿐이고, 그것이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떻든 베들레헴의 아기들은 억울하게 죽었는데,

결과적으로 예수님 때문에, 또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은 것이 되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그 아기들을 순교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런 순교자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안 믿더라도 (아기들이든지 어른들이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과 같은 죽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

진리와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싸우다가 희생당한 사람들은 모두

순교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순교자라고 말하지는 않더라도...)

사랑, 진리, 정의, 평화 등은 종교와 신앙을 초월한 것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분들을 죽인 가해자들은 모두 헤로데 같은 살인자들인데,

그런 살인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명분이

"대(大)를 위해서 소(小)가 희생해야 한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희생하는 쪽에서 할 말이지,

남을 희생시키는 쪽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희생이란 자기가 하는 것이지 남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권력자가 자기는 희생하지 않으면서 국민을 희생시키려고 한다면,

그것은 헤로데의 살인과 다를 것 없는 행동이 됩니다.

 

베들레헴 아기들의 죽음과 아벨의 죽음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카인이 아벨을 죽일 때 내버려 두셨을까?

처음부터 그 살인을 막았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인간의 자유의지로 설명할 때가 많은데,

별로 속 시원한 대답이 되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헤로데가 베들레헴 아기들을 죽인 일과 같은 일은

수없이 많이 일어났고(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도대체 하느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그러면서 어쩌면 하느님은 인류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무능력하신 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를 믿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는 억울한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것 같아도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

더 많은 역사가(하느님의 일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헤로데는 비참하게 죽었는데,

헤로데에 대한 심판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닐 것이고,

그는 나중에 본격적으로 심판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