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의 쌍둥이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으로 살아 왔으나 아마도 부모의 집에서 기거한 듯 보인다.
그 후 그녀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는데, 혼자인지 아니면 공동체 생활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당시에 그녀는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 성 베네딕투스를 만난 것 같다.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가 쓴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 33장에 의하면, 성 베네딕투스가 몬테카시노의 대수도원을 설립한 뒤 그곳에서 남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피우마롤라(Piumarola)에 베네딕토 수녀원을 설립하여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에게 맡겼다. 그로 인해 성녀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대화집" 33장에는 이들 남매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전해 온다. 성녀 스콜라스티카가 마지막으로 성 베네딕투스를 방문했을 때 성녀는 예년과 같이 수도원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베네딕투스 성인이 몇몇 수사들을 데리고 나와 수도원에서 약간 떨어진 어느 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만나서 늘 하던 대로 함께 기도하고 영적 담화를 나누었다. 밤이 되자 성녀는 오빠에게 다음날 아침까지 함께 있기를 간청했으나 베네딕투스 성인은 수도회 규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거절하였다. 이에 성녀가 눈물을 흘리며 잠시 기도를 하자 곧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서 베네딕투스 성인과 수사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대로 머물게 된 베네딕투스 성인은 “누이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의 뜻을 허락하셨구나. 대체 네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고, 성녀는 “당신은 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주님은 제 말을 귀담아들으셨습니다. 자, 이제 나가서 수도원으로 돌아가 보시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해서 남매는 밤새도록 영적인 생활과 천상 생활의 기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마지막 만남이 있은 지 3일 후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운명하였다. 베네딕투스 성인은 누이동생의 시신을 자신을 위해 몬테카시노 수도원 내에 마련해 두었던 무덤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몬테카시노가 붕괴된 후 8세기경에 베네딕투스 성인의 유해와 성녀의 유해는 플뢰리(Fleury)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이로써 이탈리아 밖의 지역에서 성녀의 공경이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8세기 말에는 베네딕토회의 시간전례에 성녀의 축일이 수록되었고, 9세기경에는 전세계 수도원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였다.
성녀 스콜라스티카에 대한 공경 예절이 전세계의 교회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1-13세기에 이르러서였지만, 로마 전례력에 정식으로 축일이 수록된 것은 18세기경이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주보성녀로 공경받고 있다.
강론 : (마르 6,53-56)
<자비, 믿음, 구원>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의료사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지만,
당시 사람들이 첫 번째로 간절하게 바란 것은 병을 고치는 일이었기 때문에
우선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일부터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도 그 일이 가장 급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았다는 말은,
물론 당연히 그 옷자락 술이 병을 고쳤다는 뜻은 아닙니다.
옷자락 술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내용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예수님의 치유가 무차별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으셨고,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고,
병의 종류나 상태를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글자 그대로 모든 병자를 다 똑같이 대하셨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조건이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 "먼저 믿어야 한다." 라는 조건이 없습니다.
(“먼저 사랑해야 한다.” 라는 조건도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적을 바란다면 먼저 믿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쪽에서 갖추어야 할 자세이지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기 위한 조건은 아닙니다.
(믿음이 기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믿음을 요구하신 적이 있긴 있는데(마르 5,36),
먼저 믿어야만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이 베풀어 주시는 자비를 받을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안 믿으면 안 준다."가 아니라 "줄 테니까 믿고 받아라."입니다.
또 "네가 받았으니 이제 나를 믿어라."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쳐 주신 다음에도
병자들에게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르코복음 7장 31절-37절에 나오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시는 장면이나,
마르코복음 8장 22절-26절에 나오는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쳐 주시는 장면을 보면
장애자 자신의 '믿음'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벳자타 못 가의 병자'의 경우에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안 믿었고,
만나서 병을 고치고 건강하게 된 뒤에도 안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을 만졌던 병자들 경우에도
그들이 전부 다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만졌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막연한 기대감이나 희망만으로 만졌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반신반의 하면서 만졌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두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사람들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굶주림만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빵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자비입니다.
'자비'란 무차별, 무조건입니다.
또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자비'입니다.
만일에 사람을 차별한다면, 또 뭔가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자비가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 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신자들에게만 자비를 베풀고 비신자들을 외면한다면,
또는 비신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면서 신자가 되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자비가 아닙니다.
자비는 신자, 비신자 가리지 말고 '그냥'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말 때문에
"그러면 안 믿어도 상관없겠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5,34)."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병의 치료 자체가 구원은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한 구원을 향해서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루카복음 17장 11절-19절에 나오는 열 명의 병자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명 모두를 고쳐 주셨는데,
예수님께 다시 돌아온 사람은 한 명뿐이었고,
그 사람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라는 선언을 들었습니다.
다른 아홉 명은 '몸만' 건강해진 채로 그냥 가버렸습니다.
만일에 그들이 끝내 믿음을 갖지 않아서
'몸만' 건강해진 채로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그들이 얻은 건강은 참으로 허망한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과 상관없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지만,
궁극적인 구원을 받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자비'에는 조건이 없지만
우리가 받기를 바라는 '구원'에는 믿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마르 16,16).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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