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5. 17-37)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에서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빛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유입니다. 인간은 자유를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창조 이야기에서 그 진가를 볼 수 있죠?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라. 살아있는 생물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어라.
여기 있는 모든 것을 다 먹어도 좋으나 단 한 가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손대지 말아라. 자유가 없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냥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기계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유 안에서 주어진 것들을 누릴 때 참 사람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예수님은 참 많이도 싸웁니다.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두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예수님은 그들을 두고 위선자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문자로 정해준 ‘율법’이라는 선에서 뭐 하나 제대로 지킨 것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율법을 무시’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행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주거나 벼 이삭을 뜯어 먹고,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는 둥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심통나기 충분한 일을 많이 하십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율법을 무시하거나 없애버리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이 무엇인지 참 의미를 알아서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행동할 때 우리를 옭아매는 규정과 법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율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삶의 기준이 되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면 율법이 가지는 말마디와 규정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례로 안식일은 쉬는 날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힘을 요구하는 일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람보다 먼저여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38년을 병으로 고통 받은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니 다른 날 깨끗하게 해 주겠다는 말은 끔찍한 위선입니다.
그런 것을 하느님이 원하실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본질을 바라보시고 그런 행동을 하십니다. 예수님에게는 사람이 먼저입니다. 당연합니다. 그 분은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율법은 단순히 지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율법이 제대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규정에서 벗어나 우리 삶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자유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빛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자유는 올바로 사용될 때 참 가치를 발휘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이것에 대해서는 잘 알죠?
1독서에서 집회서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무도 죄를 짓도록 허락하시지 않는다. 죄 지으라고 율법을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충실하게 살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도록 하셨을 뿐입니다.
비록 최초의 인류는 그 선택이 잘못되어 원죄를 불러오지만 예수님께서 그것을 되돌리십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습니다.
충실하게 하느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낼 것이냐. 지키는 데 급급해서 죄인지 아닌지 고민만 하며 살아갈 것이냐. 주어진 자유를 흥청망청 쓰면서 살아갈 것이냐는 우리의 몫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엇이 더 행복한 길인지 우리는 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유영근 야고보 신부(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 본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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