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6,13-19)
<너는 베드로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고,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셨습니다(마태 16,18-19).
또 부활하신 다음에는 그에게 당신의 양들을 맡기셨습니다(요한 21,15-17).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열두 사도의 대표가 되었고,
전체 교회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권한과 직책과 임무는 지금의 교황에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 제도를 부정하기 위해서
베드로 사도의 권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마태 16,23)."
라고 베드로 사도를 꾸짖으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그를 반석으로 삼으신 일과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신 일을 취소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반석'과 '걸림돌'은 정반대의 뜻입니다.
또 '사탄'이 하늘나라의 열쇠를 가지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고 성급하게
베드로에게 권한과 직책을 주셨다가
그것을 취소하셨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에 그랬다면 예수님은 하느님이 아닌 분이 되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이유가 없게 됩니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하신 일은 잘못될 수가 없고,
그래서 하느님은 나중에 취소하실 일을 하시지 않는 분이고,
하느님께서 하신 일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후회하셨다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것은 인간 쪽에서 볼 때 그렇게 생각된다는 표현일 뿐이고,
실제로 하느님께서 후회하셨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이 믿음은 그대로 예수님에 대해서도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꾸짖게 될 것을 아시면서도
그에게 권한과 직책을 주신 것이 되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인간적인 나약함을 아셨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함도 그에게 있음을
아셨기 때문에 그를 수제자로 삼으셨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라고 베드로를 꾸짖으신 것은 그를 강하게 단련시키기 위한 일이 됩니다.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하신 것은 그가 진짜로 사탄이라는 뜻이 아니고,
그의 행동이 사탄을 돕는 일이 된다는 뜻입니다.
또 '내게서 물러가라.' 라는 말씀은 '내게서 떠나가라.' 라는 뜻이 아니고,
'제자의 본분을 지켜라.' 라는 뜻입니다.
'내게서 물러가라.' 라는 말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내 뒤로 가라.'인데,
이 말은 '제자로서 스승의 뒤를 따라라.' 라는 뜻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 사도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한 일(마태 26,69-75) 때문에 그의 권한과 직책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일은
베드로 자신이 스스로 자격을 잃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이미 예수님께서 미리 예고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예고하실 때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31-32)."
'네가 돌아오거든'이라는 말씀은, 그가 잠시 흔들리더라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예고하신 말씀인데,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라는 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직책과 권한과 임무를 맡기신 다음에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제자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부인한 일은,
말하자면 탄핵을 당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 자신의 회개와
예수님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에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결국 위대한 사도가 되었고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이 된 것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한 일입니다.
그런데 모든 점에서 완벽해서 부르심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넘어질 때도 있고, 옆길로 빠질 때도 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부르셨고,
부르신 다음에는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고, 또 지켜주십니다.
복음서에 사도들의 부족했던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만큼 복음서의 기록이 진실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고,
또 예수님께서 그런 제자들을 어떻게 훈련시키고 지켜주셨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 같은 위대한 사도도 실수를 하고 잘못을 했으니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넘어진 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시 일어났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사도들의 끊임없는 회개와 노력과 열정과 충성을 본받아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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