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3월 2일 가해 연중 제8주일

dariaofs 2014. 3. 2. 00:30

                                                      

                                                                                     (마태 6.24-34)

 

 

가을에 피는 꽃인 코스모스는 재밌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코스모스라는 말은 조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우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 송이 꽃 이름이 우주인 셈이죠? 근데 왜 이 우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그냥 보아도 아름다운 꽃이지만 꽃 안 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술이 작고 노란 별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노란 별들이 그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놀랍지요. 작은 꽃 하나에도 우주를 담으실 수 있는 하느님을 새삼 찬미하게 됩니다.

 

이렇게 가을이면 들판에서 누구나 흔히 볼 수 있는 들꽃도 주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만드시고 피워내십니다.

 

그렇다면 창조 때에 손수 빚으시고 숨을 불어넣어 주신 우리 인간은 얼마나 더 사랑하실까? 오늘은 그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가지고 있어도 더 갖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적당히 소유하고 있어도 더 소유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소유하려는 욕망은 끝이 없고 한계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더 가지고 더 있으면 더 행복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모으게 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모아도 모아도 더 가지고 더 소유해도 특별히 나아질 게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모으면 행복해질까, 얼마까지 모으면 행복해질까. 그 기준과 의미를 명확하게 정해주고 말해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99를 가지면 1개를 채워 100을 만들어야 행복할 것 같지만 그 뒤에는 200이 있고 300이 있고 1000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다 채울 때 까지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것인가?

 

사람이 애초에 창조되기를, 세상의 모든 것 보다도 하느님을 소유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무한하신 하느님을 소유하도록 만들어진 인간이 제한적이고 유한한 재물을 통해 그것을 채우려고 하니 언제나 공허하고 비어있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자리는 무한하신 하느님으로밖에 채울 수 없는데 자꾸 얼마 되지 않는 재물을 구겨 넣습니다.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 하십니다. 하나는 섬기면 섬길수록 피폐해지는 것이고 하나는 섬기면 섬길수록 충만해지는 분입니다.

 

하나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부족해지는 것이고 하나는 다른 이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넘쳐나는 분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더 소유하려고 해야 하는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무한하신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내어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고 안 받고는 우리의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도 우리가 받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재물이 무조건 악하고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마저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보기 좋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에 마음을 두고 무엇을 따라가느냐입니다.

 

삶의 기준이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으로 확실하게 서 있고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누린다면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이론적인 믿음이 아니라 실질적인 믿음도 갖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선으로 충만하신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유영근 야고보 신부(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 본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