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2월 5일 가해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4. 2. 5. 00:30

 

 

 

불확실한 전설이지만 성녀 아가타는 시칠리아(Sicilia) 섬의 카타니아 혹은 팔레르모(Palermo)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신심이 깊어 하느님께 스스로 정결을 서원하였다고 한다.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기간에 그 지방의 집정관이던 퀸티아누스(Quintinianus)가 그녀를 탐해 그녀를 소유하려는 계략으로 박해를 이용하였다.

 

그녀가 그의 제안을 거절하자 퀸티아누스는 온갖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고 그녀를 매음굴로 보냈으며,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고, 죽을 때까지 이글거리는 석탄불에 돌리면서 구워 죽였다고 전해온다.

 

교회미술에서 그녀는 보통 한 쌍의 집게나 접시에 담은 그녀의 가슴으로 묘사되었는데, 후일 이것이 잘못 전해져 접시 위의 빵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성녀 아가타의 축일에는 빵을 축성하는 관습이 내려온다. 성녀 아가타는 처녀, 양치는 여자, 종 만드는 사람, 유리 제조공, 광부, 알프스 등반 안내자,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이자 불과 날씨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강론   :   (마르 6,1-6)

 

<나자렛에서>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 6,4)."

이 말씀은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아야 한다." 라는 뜻은 아닙니다.

("고향과 친척과 집안이라고 해도 예언자를 존경해야 한다."

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으로 가신 것은 존경받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마을 사람들과 똑같이 나자렛 사람들도 구원하기 위해서 가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뜻은,

"고향과 친척과 집안사람들은 인간적인 것들에 얽매여서

예언자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입니다.

("예언자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려면

인간적인 것들을 버려야 한다."입니다.)

 

여기서 '인간적인 것들'은 혈연, 학연, 지연 따위의 세속의 인연들,

또 그런 것들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이나 편견들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기적에 대해서 놀라기는 했는데,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듣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자기들이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가족과 친척을 먼저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모습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과 친척을, 또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는 그 생각이 그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잘 모르고,

또 예수님의 친척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복음 말씀에 나오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의 친척들이 나자렛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의 예수님과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온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가난한 목수 집안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자기들이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런 사람들과 친척 관계인 예수님도 존경할 수 없었던 것 같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일을 나자렛에서만 겪으신 것은 아닙니다.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나자렛 출신이라고 무시했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

나중에는 갈릴래아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시했습니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요한 7,52)."

 

세월이 흐른 뒤에 사도들이 선교활동을 할 때에는

그리스도교가 이스라엘에서 생긴 종교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싫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조선에서 천주교를 박해한 이유 가운데에는 서양 종교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에

자기가 받을 수 있었던 구원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사제가 되기 전의 모습만 보고,

사제가 된 이후의 삶을 외면한다면,

또 마리아 막달레나가 일곱 마귀가 들렸었다는 과거만 보고,

그 이후의 삶을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손해가 될 뿐입니다.

 

한국의 103위 성인 가운데 '권진이 아가다' 성녀가 있습니다.

21세라는 젊은 나이에 순교한 성녀인데,

박해가 닥치기 전에 교회 내부의 박해를 먼저 받았습니다.

예쁘고 젊은 여성이 흔히 겪을 수 있는 스캔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녀를 박해한 교회 내부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렇게 시달린 권진이 아가다는 순교자가 되고 성녀가 되어서

후세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제가 본당신부로 부임하면

"나는 저 신부를 잘 안다. 저 신부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같은 말을 하면서 헐뜯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서품을 받은 후에 어떤 사제로 살았는가?'와 전혀 다릅니다.)

 

어린 시절의 예수님의 처지는

귀한 진주가 나자렛이라는 진흙 속에 묻혀 있었던 것과 같았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흙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했고,

예수님이 진흙 속에 있었다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부정했고,

결과적으로 구원받기를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복음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마르 6,5)."

라는 구절은 예수님의 '능력 부족'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나자렛 사람들의 '거부'를 뜻합니다.

기적을 행하셔도 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으니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나자렛 사람들 자신들이 스스로 손해를 자초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 6,6)." 라는 말은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 하셨다." 라는 뜻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