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1월 31일 가해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설)

dariaofs 2014. 1. 31. 00:30

 

                                                                (루카 12,35-40)

 

 

<설날, 그리고 마지막 날>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

그 사람과 함께 지낸 날들을 회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지낸 설날, 함께 지낸 추석, 성탄절...

그리고 당연히 그 사람과 함께 한 일들과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 등을 회상하게 됩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지낸 날들과, 함께 한 일들과,

나의 마지막 모습 등을 회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이 말은 그대로 '하느님 앞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모습과 하느님 앞에서의 모습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는데... 다르다고 해도 별로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루카 12,38)"

'그러한 모습'은 주인이 보게 되는 종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물론 주인이 도착하기 전의 종의 모습과

도착한 순간의 종의 모습이 달라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죽기 전까지는 마음대로 살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회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그렇게 행동했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주인이 도착하기 전부터 죽 계속되었다가

도착하는 순간에 완성되는 종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중요한 말은 '종들은 행복하다!'입니다.

이 말씀은 종들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종들의 행복은 주인의 행복이기도 합니다.

신앙인들의 행복은 하느님의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인이 아니라) 종들이 행복하다고 표현하신 것은

주인이 바라는 것은 종들의 행복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바라시기 때문에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고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과 '종들'이라는 표현은

가르침을 좀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한 표현일 뿐이고,

그 자체로는 특별한 뜻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주인이 아니라 아버지이신 분이고,

우리는 종들이 아니라 사랑받는 자녀들이고...

자녀의 행복은 곧 아버지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왜 '설날' 복음으로 이런 말씀을 배치했을까?

아마도 '시간'에 대해서 묵상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새해 첫날은 전 해의 마지막 날의 다음 날입니다.

완전히 새로 시작된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노력해서 만들어낸 시간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 하루일뿐입니다.

나의 시간은 '어제', 또는 '작년에' 끝나버렸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렇게 살아서 '오늘'을 맞이했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하느님께서 조금 더 주신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이 마지막 날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나?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새해 첫날이어서 특별한 날이 아니라,

하루 더 허락받은 날이기 때문에 특별한 날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제단 안에서의 서열이 자꾸 높아지는데,

그것은 선배 신부님들이 세상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후배들 쪽에서 먼저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사제단 서열이 마치 떠나는 순서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점점 더 후배가 늘어나고 선배가 줄어드는 것은

떠나야 할 때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확실히 실감나게 합니다.

살아온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남은 날들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과연 나의 마지막 모습은 어떻게 기억될까?"

(나는 하느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까?)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날의 다음 날은 하느님 앞에서의 첫날이 될 것입니다.

그날은 그 나라에서는 각자 처음이자 유일한 설날이 될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이곳을 떠날 것인지는

저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인지... 로 이어집니다.

(작년의 마지막 날에 엉망으로 취해 있었다면

새해 첫날을 산뜻하게 맞이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오늘 엉망으로 취해 버리면 내일도...?)

 

"새해 첫날부터 강론 주제가 왜 이러냐?"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복음 말씀의 주제가 그래서 이렇게 되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시간의 흐름이 빨라진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그래서 그렇습니다.

 

좋은 모습을 남기고 먼저 떠난 사람들을 '그곳'에서 다시 만나려면

나도 역시 좋은 모습으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웃으면서 홀가분하게 이곳을 떠날 수 있다면

그곳에 도착할 때에도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