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2월 2일 가해 주님 봉헌 축일

dariaofs 2014. 2. 2. 00:30

 

                                                                 (루카 2,22-40)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하느님이신 분이기 때문에

율법대로 예수님을 봉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을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봉헌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루카 2,22)."

 

혹시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몰라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그것은 아닙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를 예고했을 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도 알려 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 1,32)."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봉헌한 일은

하느님에 대한 순종, 율법에 대한 존중, 그리고 겸손으로 해석됩니다.

이 일은 마리아와 요셉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순종과 겸손을 드러낸 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어린 아기였지만... 그래도...)

 

그러나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부모가 자신들의 아기를 하느님께 봉헌한 일이고,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께 아기를 봉헌했는데,

이것은 그 아기의 부모로서 자기 자신들을 봉헌한 것과 같습니다.

아기 예수의 부모로서 앞으로 어떤 고난과 시련을 겪어도

감수하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천사로부터 아기 예수님의 잉태 예고를 듣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응답했을 때 이미 각오한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공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봉헌함으로써

마리아와 요셉은 자신들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육적인 부모로서

예수님께서 앞으로 겪게 될 모든 고난과 시련을

함께 겪겠다고 '공적으로' 고백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의미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두 사람의 예언자는 알아보았고 (공적으로) 그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바로 '시메온'과 '한나'입니다.

 

복음 말씀에는 시메온이 아기에 대해서만 예언을 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해서도 예언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겪을 고통에 관한 시메온의 예언은(루카 2,35)

어머니가(요셉도) 예수님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공적 확인과도 같은 예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봉헌한 일은

마리아와 요셉이 자신들을 봉헌한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걷게 될 그 길은 예수님의 길이고, 예수님을 위한 길이고,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제나 수도자가 되었을 때, 우리는 흔히 그 부모에 대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아들(딸)을 주님께 봉헌했다." 라고 표현합니다.

사제나 수도자 자신이 자기를 주님께 봉헌한 일이지만,

부모들도 그 봉헌에 함께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부모는 끝까지 자식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반대하는데도 사제나 수도자가 된 사람들의 경우에

그 사제나 수도자의 부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런 경우라도 부모가 그 봉헌에 동참한 것은 맞는데,

그들의 마음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제나 수도자가 된 사람은

남들보다 더 큰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됩니다.

가족 모두가 온 마음으로 함께 봉헌에 동참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은총인지...)

 

지금 사제와 수도자의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부모들이 자신들의 아기를 세례 받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아세례는 종교와 신앙을 선택할 권리를 아기에게서 빼앗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은총을 아기도 받기를 바라는 부모의 사랑과

아기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의 품속에서 보호받기를 바라는 소망과

자신의 신앙이 그 무엇보다도 '좋은 것'임을 믿는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일이고...

봉헌입니다.

 

자식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것은

그 자식을 잃거나 빼앗기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빼앗아가는 일이 아닙니다.)

원래 '봉헌'이란 바친 것보다 더 큰 은총을 받는 일입니다.

 

성모님은 당신이 낳고 키운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심으로써

수많은 자식들을 얻었습니다.

전체 교회가 모두 성모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모가 아들(딸)을 사제(수도자)로 봉헌하면

'교회 안에서' 수많은 아들과 딸을 새로 얻게 됩니다.

 

유아세례도 더 많은 아들과 딸을(가족을) 얻는 일입니다.

신앙인의 공동체는 모두가 가족이고, 형제이고,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