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3월 25일 가해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dariaofs 2014. 3. 25. 00:30

 

                                                                   (루카 1,26-38)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탄생 예고'(루카 1,26-38) 장면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말을 보면

하느님의 결정 사항을 일방적으로 통고하거나 명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용을 생각하면, 천사가 하는 말은 사실은 제안이고 권고입니다.

(부탁이라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인간에게 부탁하실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마도 천사는 "하느님께서 너를 선택하셨고, 네가 이런 일을 해 주기를 원하신다.

너는 따르겠느냐?" 라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 라는 마리아의 말은

"저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또는, "그러면 지금이라도 바로 요셉과 결혼해야 합니까?") 라는 뜻이 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라는 마리아의 말에서

중요한 말은 '바랍니다.'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저도 원합니다."입니다.

마리아 자신이 원했던 일이어서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마리아도 원한다는(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마리아는 천사가 나타나서 말을 하기 전까지는

그런 일을 원하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그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니 기대하거나 희망한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천사가 하는 말이 청천벽력 같은 말로 들렸을 텐데,

또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는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응답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응답과 순종만 강조할 때가 많은데,

그 전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응답과 순종이 가능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라는 말은

"마치 종이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이

하느님께서 주인으로서 일방적으로 명령하시고

마리아는 종으로서 무조건 복종해야 했던 일이라면

(마리아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하느님을 찬양하기는 해도

마리아를 본받자는 말을 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마리아는 종이 아니라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위해서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일입니다.

자신의 자유의지로 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정답은 "마리아처럼 믿고 응답하고 순종해야 한다."입니다.

"그러면 실제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어느 날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서 어떤 말을 할 때,

우리는 그 천사를 천사로 바로 알아볼 수 있을까?

천사를 천사로 알아보았다고 해도,

그 천사가 정말로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을 한다면

그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을 수 있을까?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해도 금방 응답하고 순종하게 될까?

 

그런데 천사가 아니라 교회 장상이 어떤 어려운 임무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면

(명령이 아니라 부탁한다면) 기꺼이 할 수 있을까?

장상이 아니라 공동체나 동료나 이웃이 어떤 어려운 일을 부탁한다면?

그 일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아주 부담스러운 일이라면?

아무런 대가도 없고 보상도 없고 희생만 해야 하는 일이라면?

실제 현실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천사가 우리가 생각하는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주기만 해도 쉬울 텐데,

어떤 때에는 장상의 모습으로도 나타나고,

어떤 때에는 동료나 이웃의 모습으로도 나타나고,

어떤 때에는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의 모습으로도 나타나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그 일 자체가 악한 일이고, 악한 결과만 생기는 일이라면

그 일은 하느님의 일이 아니고, 그것을 부탁하는 사람은 천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일 자체가 선한 일이고, 모두를 위한 일이라면,

그 일은 하느님의 일이고, 그것을 부탁하는 사람은 천사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 때에는

우리가 할 수 있으니까 맡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맡기시면서 하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또 일을 맡기신 다음에 잊어버리고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그 일을 해낼 수 있도록 계속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떤 일을 부탁한 다음에는 그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부탁한 사람과 부탁 받은 사람이 함께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선(善)을 행하는 일인데도 자기만 희생하는 것 같아서 싫어하고,

힘들다고 기피하고, 어렵다고 거절하고...

그러면 그 선(善)은 다른 사람이 대신 행하게 될 것이고,

그 선(善)의 열매는 그 사람이 차지할 것입니다.

싫다고 거부한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