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냐의 발렌시아(Valencia) 태생인 성 빈첸시오 페레리우스(Vincentius Ferrerius, 또는 빈첸시오 페레리오)는 귀족인 빌리암 페레리우스와 콘스탄스 미구엘의 아들로 태어났고, 1367년에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다.
그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바르셀로나(Barcelona)로 갔으며, 불과 20세의 나이로 레리다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특히 그의 설교가 뛰어났는데, 유대인과 모슬렘 사이에서도 좋은 평판을 들었다.
1378년부터 서방교회를 진동시킨 교황 논쟁에서 성 빈첸시오는 아비뇽(Avignon)으로 가서 루나의 베드로(Petrus, 베네딕투스 13세) 추기경을 적극 지원하고 그의 고문 겸 고해신부가 되었다.
1399년 성 빈첸시오는 아비뇽을 떠나 10여 년 동안이나 프랑스, 에스파냐 등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설교하였다.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큰 감명을 받았고 개종자의 무리가 마치 군대의 행진처럼 무리지어 나왔다고 한다.
이즈음에 그는 성 도미니코(Dominicus)와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를 대동하신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것은 자신이 더욱 설교에 열심하라는 뜻이라고 해석하였다.
그의 개종자 가운데에는 시에나(Siena)의 베르나디네와 사보이아(Savoia)의 마르가리타(Margarita, 11월 23일)가 매우 유명하다.
그는 그 나라말을 모르는 지역에서도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말씀의 은혜’를 받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또 이에 따르는 수많은 기적들 때문에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란 별명도 얻었다.
1416년 그는 아라곤(Aragun)의 페르디난도 왕처럼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교황 논쟁의 종지부를 찍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성 빈첸시오는 사망하기 3년 전부터 프랑스 여러 지방을 순회하며 설교하던 중 브르타뉴(Bretagne)의 반(Vannes)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455년에 시성되었다.
성 빈첸시오 페레르 사제의 저서 [영신 생활]에서
(Cap. 13: ed. Garganta-Forcada, pp. 513-514)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설교나 권고의 말에서 어떤 문제를 다룰 때 소박한 말과 스스럼없는 말씨를 사용하십시오. 할 수 있는 데까지 많은 예를 들어 어떤 구체적인 죄를 범한 사람은 누구든 마치 여러분이 그 사람 개인에게만 설교하듯 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끔 말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말이 오만이나 경멸로 가득 찬 마음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 말고 어버이다운 사랑과 자비로 가득 찬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이십시오.
자기 아들의 죄와 중병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버지처럼 하고, 깊은 함정에 빠져 든 아들을 구출해 내려 하는 어머니가 근심하는 것처럼 하십시오. 한마디로 그들의 진보를 기꺼워 하고 그들을 천국의 영광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사람처럼 하십시오.
그러한 설교 방법은 일반적으로 회중에게 좋은 효과를 줍니다. 반대로 덕과 악에 대한 이론적이고 일반적인 설교는 청중들로부터 거의 반응을 얻어내지 못합니다.
고해성사에서도 이와 똑같이 하십시오. 소심한 사람을 부드러운 말로 위로할 때나 마음이 굳어진 죄인에게 하느님의 두려움을 더 준엄하게 넣어 줄 때에, 여러분은 언제나 가장 깊은 사랑을 보여 주어 그 죄인이 항상 여러분의 말이 순수한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깊숙이 찌르는 말보다 먼저 감미롭고 사랑에 찬 말로 권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영혼에 보탬이 되려 하면 여러분은 우선 진심으로 하느님께 나아가야 하고, 당신 자비하심으로 모든 덕의 총합이며 또 그것을 통하여 여러분이 소망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그 사랑을 여러분 안에 부어 넣어 주시기를 단순하게 청해야 합니다.
강론 : (요한 7,40-53)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메시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요한 7,41-42)"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요한 7,47-48)"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요한 7,52)."
이 말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이어야 하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한다.
2) 갈릴래아가 아니라 유다 사람이어야 한다.
3) 최고의회와 바리사이파가 공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입니다.
또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갈릴래아의 가난한 목수 아들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갈릴래아 사람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것도,
또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만일에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족보와 출생증명서 같은 것을 보여 주었다고 해도
그들은 조작된 서류라고 하면서 안 믿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진짜 메시아라면 갈릴래아가 아니라 유다 지역에서 살았어야 하고,
유다에서 활동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주장 가운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최고의회와 바리사이파가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들이 심사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최고의회는 인간이 만든 기구였을 뿐이고,
바리사이파는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만든 종파였을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인정을 받고 있는지를 먼저 반성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에 이렇게 예언되어 있다." 라는 주장도 문제가 됩니다.
이런 주장은 마치 "하느님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을 따라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고,
성경을 하느님보다 높은 자리에 놓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과 다르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 종속되어 있는 분은 아닙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일 뿐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내용이 하느님의 일을 제한하거나 구속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하신 일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지키신 일입니다.
그런 예언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하시고,
또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하신 일은
하느님의 자유 권한으로 하신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메시아는 유다 지역에서만 살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만 활동하게 될 것이다." 라고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성경을 잘 아는 척 했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종교, 또는 교회에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제도 교회의 권위와 권한을 예수님의 권위와 권한과 대등하게 내세우거나,
또는 위에 놓을 수 없습니다.
이 말에 대해서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도들에게 전권을 주시지 않았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로 전권을 주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만일에 거스른다면 교회가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의 권한은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범위 안에서"로 제한됩니다.
아무 일이나 다 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쟌다르크 성녀를 마녀라고 화형에 처했던 제도 교회가
세월이 흐른 다음에 성녀로 다시 선포한 일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됩니다.
신앙생활의 기준은 항상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입니다.
성경 해석도 예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특히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어떤 유명한 학자가(또는 높은 사람이) 했다는 말이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을 해설할 때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에는
유명한 사람이나 높은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일은 무척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훼손하거나 왜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묵상 글을 쓰면서도 습관적으로 다른 이의 글을 인용합니다.
그것은 자기 지식을 자랑하려는 '교만'일 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4년 4월 7일 가해 사순 제5주간 월요일(성 요한 밥티스타 드라살 사제 기념 허용) (0) | 2014.04.07 |
|---|---|
| 2014년 4월 6일 가해 사순 제5주일 (0) | 2014.04.06 |
| 2014년 4월 4일 가해 사순 제4주간 금요일(성 이시도로 주교 학자 기념 허용) (0) | 2014.04.04 |
| -지금 여기 강론대- [임상교 신부] 내 믿음은 현재 진행 중 (0) | 2014.04.03 |
| 2014년 4월 2일 가해 사순 제4주간 수요일(파울라의 성 프란치스코 은수자 기념 허용) (0) | 2014.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