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사순 제5주일) 요한 11,1-45
가끔 청양 지역을 걷습니다. 지자체에서 조성한 둘레길을 걷다보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을 만납니다. 걷다가 지치면 앉아서 쉬고 물 한 모금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하늘을 쳐다봅니다.
눈에 들어온 하늘은 참 맑고 푸릅니다. 언제나 있는 하늘, 그러나 고개를 들고 보아야만 볼 수 있는 하늘을 가슴에 품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아쉽습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흙을 밟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걸어야 하는 길은 모두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흙을 밟기 위해서는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포장된 농로 옆으로 보이는 땅의 모습은 커다란 벽에 가로막혀 고립되어 있는 감옥처럼 느껴집니다. 답답함을 느낍니다.
성당 경당 옆에 조그만 땅이 있습니다. 5평 정도 되는 땅입니다. 그곳에 씨앗을 뿌리고 꽃과 나무를 심었습니다. 삽으로 땅을 파면 그곳에 지렁이가 나옵니다. 통통하게 살찌고 큰 놈들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땅, 그래서인지 꽃과 나무가 잘 자랍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놈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맑아집니다. 아름답습니다.
씨앗을 뿌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씨앗에서 내가 원하는 그것이 나올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결과가 만들어질까? 상추 씨앗을 뿌리면 상추가 나옵니다. 그런데 신비합니다.
상추를 캐서 바라보면 제가 뿌렸던 씨앗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튼실한 뿌리를 지닌 상추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에서 만들어지는 놀라운 신비, 결국 신비는 하늘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생명의 흐름과 더불어 매일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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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길 | ||
믿음이 무엇일까요? 믿음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다’ 혹은 ‘저것이다’라고 규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게 믿음은 ‘사라짐’입니다. 제가 있던 자리에 또 다른, 그러나 이어지는 존재의 탄생을 위해서 기꺼이 자리를 포기할 수 있는 상태가 제게 믿음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믿음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인생이라는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자로서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하느님 나라의 가치 안에서 인생이라는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자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믿음을 규정되고 확정된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제게 믿음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빛이 없는 상태입니다. 아니, 빛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죽음입니다. 죽음으로부터 돌아온다는 것은 다시 빛을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고, 빛 속에서 걷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라자로를 소생시키기 위해서 무덤을 막았던 돌을 치우라고 하십니다.
어둠으로 가득하던 무덤에 빛이 비칩니다. 빛이 무덤 속을 비추기 시작할 때, 소리가 들립니다.
“이리 나와라!”
생명을 지닌 존재는 빛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빛은 죽음을 살아있는 것으로 변화시킵니다.
살아있으면서도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건전한 자기비판이 아닌 자기비난이 주된 생존의 기제가 되었던 시간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아야 하기에 선택한 생존 기제였지만, 내면 안의 기쁨을 느낄 수 없었고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판단하던 시간은 고통스러웠습니다.
라자로의 소생에 관한 복음을 들으면서 가슴을 뛰게 만든 것은 “돌을 치우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아!” 머릿속에 강렬한 빛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돌을 치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어둠 속에 나를 갇혀 있게 만들었던 돌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하나씩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빛이 저를 비춥니다. 아니, 더 분명하게는 제 안에서 빛이 비추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돌을 치우기 시작하니 빛이 느껴집니다. 저는 지금도 돌을 치우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돌을 치우는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마르타는 “주님께서 부활이시고 생명이시며 그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그녀의 고백은 놀랍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백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고백은 진행 중인 과정이고 라자로의 소생을 통하여 더욱 성숙되고 확장됩니다.
믿음이 뿌려진 씨앗이 되어 결실을 맺게 되었을 때, 믿음의 씨앗은 뿌리를 내린 또 다른 상태의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 성장된 믿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복음은 알려줍니다.
내가 믿는 대로 살아갑니다. 믿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믿음은 가치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가치는 선택한 삶의 방향성입니다. 가치는 미래에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지금 여기에 존재합니다.
한 단계 한 단계 가고자 하는 부분이 가치입니다.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그래서 가치는 언제나 걸어야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제게 믿음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믿음의 완성을 향한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결과가 다시 과정이 되어 또 다른 결과를 만드는 삶, 그래서 제게 믿음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삶의 상태입니다. 행복한 부활 되십시오.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신부 (대전교구 청양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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