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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영성으로> 샬롬과 살림의 성경읽기 (89) ‘함께 아파하기’의 사회적 영성

dariaofs 2016. 12. 29. 01:30

 


 

예수님 당시의 유다이즘 안에는 어떤 영성적 가치가 하느님 백성의 거룩함(holiness), 즉 하느님의 본질적 품성에서 유래하는 최상의 윤리적 목표에 영감을 주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팔레스티나에 존재했던 다양한 종교적 그룹들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해방을 위하여 각기 정결(purity), 적응(accommodation), 반란(rebellion), 은둔(retreat) 등의 영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특이하게도 사회적 ‘함께 아파하기’(social compassion)의 영성을 가르치고 실천하셨다.

예수님의 ‘함께 아파하기’ 영성은 그분의 가르침 중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에 잘 드러난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질문을 한다.

 

이 율법 교사의 관심은 영원한 생명이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그 대답을 구한다. 영원한 생명에로 이르는 길은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을 통해서이다.

 

이 점에서 예수님과 이 율법 교사의 생각은 같다. 그런데 율법 교사는 자기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라고 묻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그 이웃이 누구인가를 묻는다.

 

그의 출발점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누가 자신의 이웃인지를 묻는다.

이에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사실 자신의 이웃이 누구인가를 묻는 율법 교사의 관점은 비유에 등장하는 사제와 레위인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는 강도를 만난 그 사람이 이웃이지 못했다. 그들의 이웃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강도 만난 사람을 쳐다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사제와 레위인은 왜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가 버렸을까?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초주검 당한 이가 죽어 있기라도 했다면 결코 접촉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정한 것이었다.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들에게 있어 정결(淨潔)과 부정(不淨)의 경계는 철저했다.

 

그런데 루카 10,33에서 사마리아인은 초주검 당한 이를 보고서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를 끝까지 돌보아 준다. 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에토스가 바로 ‘함께 아파하기’(compassion)이다.

 

사제와 레위인으로 대표되는 유다인들이 분리와 배제의 에토스를 따랐다면, 착한 사마리아인은 정결과 부정의 경계,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의 경계를 허물고 그것을 뛰어 넘는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제시하신 자비의 에토스는 고통 받는 이와 ‘함께 느낌’(共感), 즉 ‘함께 아파하기’이다. 그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를 갈라놓았던 일체의 차별과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의 끝부분에서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신다.

 

여기서 우리는 이웃에 대한 율법학자와 예수님의 서로 다른 관점을 발견한다. 예수님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이다.

예수님은 고통 받는 이와 함께 느끼는 새로운 삶의 방식, ‘함께 아파하기’의 에토스를 실천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함께 아파하기’의 에토스는 분리와 배제를 뛰어 넘는 사랑의 실천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품성을 ‘함께 아파하기’로 계시하셨고, 그것을 거룩함의 참된 의미이며 하느님 백성의 탁월한 덕행으로 제시하신다.

 

이와 같이 다양한 경계들로 말미암아 갈라진 공동체를 다시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회적 영성의 핵심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