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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새사제 허영엽 신부와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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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그렇네요!"
얼마 전 평소 가깝게 지내던 교계 신문기자와 대화 중 서품식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운 좋게도 얼마 전 성인품에 오르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께서 1984년 한국에 오셨을 때 사제품을 받았다.
시성(諡聖)은 순교자 또는 성덕이 높은 죽은 이를 성인의 품위에 올려, 전 세계 교회가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도록 교황이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을 말한다.
사제품을 받은 지 벌써 30년이 흘렀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나의 수품식 날이 어제 일처럼 분명한데 말이다.
1984년 5월 5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전국의 부제 37명의 사제 서품식을 주례하기 위해 대구를 찾으셨다. 그날 대구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드디어 사제서품식이 시작됐고, 우리 부제들은 모두 성인들께 전구를 청하기 위해 땅에 엎드렸다.
그런데 내가 엎드린 바로 앞, 손이 닿을 거리에 교황께서 무릎을 꿇으셨다. 엎드려있는 내 귀에 교황의 성인호칭기도 노랫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교황님은 새 사제들을 안아주셨다.
교황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포옹해주셨다. 교황님의 품이 아버지의 가슴처럼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우리 새 신부들은 다음날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대회 및 103위 성인 시성식에 참석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인들이 탄생하는 현장에 함께한다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러웠다.
교황이 직접 성인의 나라를 방문해 시성을 한 것은 물론 한꺼번에 103위가 시성된 것 또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의도광장을 꽉 메운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 선조들이 성인품에 오르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지켜봤다. 많은 신자가 뜨거운 감격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과 그가 주례한 시성식은 한국사회에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분명하게 각인시키면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있게 한 발판이 됐다. 당시 시성식은 교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당시 정치 사회적으로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우리나라에서 '이 땅에 빛을'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던 교황님 방한 행사는 어둠 속에 빛을 비추듯, 많은 이들이 교황 방문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고자 했다. 그리고 실제로 교황 방문으로 세상과 인간을 향한 구원의 메시지가 이 땅 구석구석에 널리 퍼져 나갔다.
시성식에서 교황은 순교자들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힘줘 강론하셨다. "한국 순교자들의 죽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닮은 것은 그들의 죽음이 새 생명의 시작이 됐기 때문입니다. 새 생명은 이웃에게도 전해져 교회 안에 살아있는 공동체가 됐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입니다."
103위 시성식은 한국교회의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우리 교회는 1784년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지 200주년을 맞으면서 103위 한국 순교자들을 성인품에 올리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이를 통해 200년에 걸쳐 어려움을 극복하고 풍요로운 성장을 이루어 낸 동아시아의 한 작은 교회를 세계 교회가 함께 경축했다.
신앙의 도움을 받던 우리 교회는 이제 주변에 도움을 주는 교회로 탈바꿈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 당시 200만 명이었던 신자 수가 지금은 500만 명 이상에 이를 만큼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외적 성장에 비례해 내적 성장도 함께 이뤘는가는 깊이 성찰해볼 일이다.
사실 순교자들의 시성은 그분들의 영광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시성과 103위 시성 30주년을 맞이해 그때의 감격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의 순교신심을 우리 마음 안에 충실하게 간직하고 있는지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순교성인들이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을 우리가 얼마나 실현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순교성인들이 죽음에도 굴복하지 않고 간직했던 신앙의 초심으로 돌아가 현재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마음을 한데 모으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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