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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민구(왼쪽) 신부가 103위 시성 결정과 시성건 명칭 변경 등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있다. 가운데가 당시 교황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장익 주교다. |
"교황님께서 한국교회에서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고 하셨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면 한국교회에서 정말로 원하는 것을 말해도 되나요?"
"아직 한국교회에서 원하는 대로 된 게 아니란 말인가?"
"네. 사실 한국교회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에는 서양 선교사들 이전에, 한국인 사제 탄생 이전에 이미 평신도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하상'이란 분입니다.… 이토록 대단한 한국천주교회의 평신도 중에서 단 한 분의 이름도 시성건 명칭에 올라 있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시성건 명칭에 오직 김대건 신부 이름만 올라 있다면, 그토록 훌륭했던 한국천주교회의 평신도들의 역사를 어찌 세계 사람들이 알 수 있겠습니까!"
"자, 여기 종이와 펜을 줄 테니 한국교회에서 정말로 원하는 것이 뭔지 써보게!"
'김대건 안드레아와 정하상 바오로 및 101위 동료 순교자들의 시성건'
"알았네. 이것이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시성건 명칭이 바뀔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네"
1983년 11월 11일. 교황청 시성성차관 집무실에서 크리산 대주교와 103위 한국 순교 복자 시성 청원인 윤민구 신부와의 대화 내용이다.
이날 대화로 103위 시성건 명칭이 '한국의 김대건 안드레아와 102위 동료 한국순교복자들의 시성건'에서 '김대건 안드레아와 정하상 바오로 및 101위 동료 순교자들의 시성건'으로 최종 확정됐다.
원래는 '1925년에 시복된 복자 라우렌시오 앵베르, 김 안드레아 및 77위 동료 순교자들과 1968년에 시복된 복자 시메온 베르뇌, 루카 위앵 및 22위 동료 순교자들의 시성건'이란 긴 이름이었다.
1983년 3월 7일 자로 103위 순교 복자 시성 청원인을 맡아 103위 한국 순교 성인 탄생까지 '뼈가 부서지도록' 일했던 윤민구(수원교구 손골성지 담당) 신부.
윤 신부는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시성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한해 시성식을 거행할 것이라는 국내 분위기와는 달리 바티칸 현지에선 시성 추진 6년이 지난 1983년 초까지 답보상태였기 때문이다.
교황청 라테라노 대학에서 박사 논문을 마무리할 무렵인 1983년 3월 시성 청원인으로 공식 임명된 그는 시성성을 방문하고 차관보 페라야 주교가 한국 관계 서류라며 보여주는 문건을 보고 그만 몸이 굳었다.
시성 청원 준비 서류가 겨우 A4용지 두 장짜리 편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시성 준비는 그만큼 미흡했다.
한국의 103위 순교 성인이 시성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요한 바오로 2세의 배려와 한국교회에 대한 사랑,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의 노력, 시성성 장관 팔라치니 추기경의 협조 덕분이었다고 윤 신부는 회고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3년 1월 시복시성절차법을 개정하고, 시성성장관에게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 출신 성인을 모실 수 있도록 한다
△평신도 출신 성인을 탄생시켜야 한다
△지역 교회를 도와주는 방향으로 시성 절차가 전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황은 또 "한국교회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고 시성성장관에게 특별히 당부했다.
시성성 장관 팔라치니 추기경은 시성성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과 시성추진위원장 김남수 주교에게 103위 시성이 진척될 수 있도록 '기적 심사 관면' 청원서를 제출하라며 서류 작성 방법까지 세세히 알려줬다.
윤 신부는 "매일 시성성에 들렀는데 팔라치니 추기경이 장관 전용 엘리베이터를 알려주면서 필요할 때 언제든지 찾아오라고까지 배려해 주셨다. 덕분에 이 엘리베이터를 자주 이용했다"고 회상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시성건 명칭에 교구장 주교(앵베르 주교와 다블뤼 주교를 말함)를 제쳐놓고 한국인 신부를 우선시하는 것은 국수주의다.''수세기에 걸친 교회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다'라며 시성건 명칭과 변경과 한국에서의 시성식을 반대한 시성성 관계자들과 국무원장, 교황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103위 시성청원인이 된 계기로 귀국 후 주교회의 사무차장과 수원가톨릭대 교수를 거쳐 10여 년째 성지 담당 사목을 하고 있는 윤 신부는 "솔직히 우리나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가운데 103위 성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본받고 있는가 묻고 싶다"면서 "내용적으로 볼 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발전된 것이 별로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사목신학 박사인 그는 "한국교회 사목의 뿌리는 순교 신심"이라고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하느님을 믿어 현세와 내세에서 참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순교자들의 신심만큼 신앙의 바른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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