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 즉 성소 안에 살아간다. 이 부르심을 깨닫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성소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나에게도 성소가 있다’고 자각해야 한다. 하느님이 사제·수도 성소뿐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모든 사람을 부르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성소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나타나는 표지, 자기 마음의 갈망,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을 살펴보면서 성소를 식별할 수 있다.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가 제자들을 부르듯이 성소를 주도하는 것 역시 하느님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르심을 삶의 자리에서 나타나는 표지로 발견하곤 한다.
이 표지는 신앙적 체험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나 주변 사람들, 일상의 다양한 요소를 통해 나타난다. 예를 들면 마더 테레사 수녀에게는 다즐링으로 가는 기차에서 본 가난한 이들의 참담한 현실이 성소의 표지였다.
노틀담수녀회 성소담당 윤나영 수녀는 “하느님은 내 삶의 태도나 살아가는 방법 속에서 성소를 키워가신다”며 “내게도 성소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도 깨어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성소의 기초”라고 말했다.
성소는 내적 갈망을 통해서도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의 욕구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성소를 아는 하나의 방법이다. 자신이 간절히 이루고 싶은 바람 역시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욕구가 성소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갈망이 성소인지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그 갈망의 의도와 목표가 ‘하느님의 좋으심을 선포’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사제·수도·결혼·독신 등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그를 통해 무엇을 이루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좋으심을 선포’하는지의 여부는 ‘나를 위해’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라는 마음이 더 큰지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그 성소의 길을 가는 자신이 ‘참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투신할 수 있다면 그 길이 바로 자신의 성소라는 것이다.
수원교구 성소국장 지철현 신부는 “하느님은 누구나 기쁘게 살길 바라시고, 하느님을 만나면 우리의 삶이 축제가 된다”면서 “하느님을 자꾸 만나야 기쁨이 생기고 내가 어디로 가서 그 기쁨을 전하고 싶은지를 하느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이 성소”라고 설명했다.
성소 식별에는 실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자신의 내적 지향과 구체적 현실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를 테면 수도자의 삶에 대한 갈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공동체 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면 수도원에 들어가기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또 다른 대안에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표지, 갈망, 실현 가능성을 보며 자신의 성소를 발견했다면 응답이 뒤따라야 한다. 성소는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정이다.
아무리 성소를 찾았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 길에 투신하겠다는 결단이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성소를 잃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춘천교구 성소국장 김주영 신부는 “본인의 결단과 노력이 없는 불완전한 성소는 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서 “신학교에서도 ‘형성’(Formatio)이라고 해서 끊임없이 사제로서 잘 살도록 영적인 노력을 하도록 가르친다”고 전했다.
성소를 찾고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 전제돼야 하는 것은 건강한 신앙생활이다. 특히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과 하느님이 하시는 일인 성사, 하느님과 대화하는 기도는 성소를 깨닫게 해주는 밑거름과 같다. 하느님을 잘 만나야 성소, 즉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기도 더 쉽기 때문이다.
예수회 성소담당 최성영 신부는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고 왜곡되지 않은 건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성소를 찾을 수 있다”면서 “계속 기도하면서 가장 깊은 마음에서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것을 찾고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성소란 무엇인가
인간은 삶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소명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 ‘성소’(聖召)이다.
성소는 넓은 의미의 성소와 좁은 의미로서의 성소로 해석된다.
혼인생활, 직업 등 각자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 나가는 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성소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부모로, 어떤 이는 교육자로, 정치인으로, 군인으로 또 예술가로서의 성소를 받는다. 즉, 모든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주신 고유한 의미가 있다.
좁은 의미에서 성소는 사제 성소나 수도 성소로 규정된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을 사목하며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축성되며, 수도자는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적 권고를 따라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완전해야한다”(마태 5,48)는 말씀을 실천해야한다.
사제 성소와 수도 성소를 결정하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는 마음으로부터 성소 생활을 원해야 하며, 두 번째는 교회가 인정하는 장상이 성소를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으로부터 특정한 방향이나 사명으로 불리는 모든 것을 성소라고 지칭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과 모세, 예레미야도 성소를 받았다.
이들을 향한 거룩한 부르심을 통해 성소는 개인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주님의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예레미야는 주저하지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1, 예레 1,8)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꺼이 응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소명에 책임을 다했다.
하지만 성소를 받았으나 합당하지 않은 이는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을 수 없다.(마태 22,8)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늘 ‘깨어 있어’(마태 25,13)야 한다. 늘 깨어 있으면서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방법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제51차 성소주일 담화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성소는 가는 길은 서로 다를지라도 자신을 벗어나 그리스도와 복음을 삶의 중심에 둘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혼인 생활을 하든, 봉헌 생활을 하든, 사제 생활을 하든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사고방식과 행동 방식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성소식별에 도움주는 방법들
■ 이성적 방법으로 식별하기
자신이 선택한 길에 확신이 없을 때는 자신을 성찰하며 기도 중에 식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식별이 어렵다면 이성적으로 식별하는 방법이 선택을 위한 기도에 도움이 된다.
먼저 한 달, 일주일 등 일정기간을 정하고 식별할 사안에 관해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적을 표를 만든다. 마음이 평온할 때마다 식별할 사안을 생각하며 자신 안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적는다.
적은 후에는 본질적이지 않은 사항을 하나씩 지워나가면서 자신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지 살핀다. 결정된 사항은 미사 중 하느님께 봉헌한다.
■ 렉시오 디비나
하느님의 부르심인 성소를 잘 알아듣기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성경을 읽는 방법 중 오랜 전통을 지닌 방법이 렉시오 디비나다.
렉시오 디비나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나 단어를 계속 반복하고 음미하는 방법이 고전적이다.
이때 반복한 구절은 일상생활 중에도 곱씹는다. 렉시오 디비나를 계속 해나가면 하느님을 알고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 매일의 성찰 기도
성소는 단순히 한 번의 큰 부르심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안에 끊임없이 일어난다. 매일 기도 안에서 성소를 찾고 삶으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매일의 성찰이 필요하다.
성찰은 우선 매일 하루를 정리하면서 오늘 하루 자신을 하느님 뜻을 따라 성소의 길로 이끈 것은 무엇인지, 반대로 하느님 뜻에 맞지 않는 길로 이끈 것은 무엇인지를 돌아본다.
이후 하느님 뜻에 따른 일을 하느님께 감사하고 앞으로 하느님 뜻에 더 나아가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한다.
<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