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통틀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자주 긴장, 미움, 원망의 부정적인 관계로 설명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아름다운 심성의 며느리 룻이 있다.
그녀는 신앙과 효성의 모델로 우뚝 서있는 인물이다.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은 기근이 들자 아내 나오미와 함께 이방인 지역 모압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얼마 후 그는 아내와 두 아들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곳에서 나오미가 이방인 며느리를 맞았는데 하나는 오르바였고, 다른 하나는 룻이었다.
그런데 그만 두 아들도 세상을 떠났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늙고 불쌍한 과부 나오미는 고향 땅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고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했다.
“얘들아, 나는 이제 고향 유다지방으로 돌아가련다. 너희들은 아직 젊으니 친정으로 돌아가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려무나.”
그러자 두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저희들도 어머니를 따라 가겠습니다. 허락해주세요...”
나오미와 두 며느리는 정이 깊었던 것 같다. 시어머니의 설득에 결국 큰 며느리는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 저에게 어머니를 버려두고 혼자 돌아가라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어머니 가시는 곳이면 저도 가겠습니다.
어머니의 나라가 저의 나라입니다. 어머니의 하느님이 저의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니 곁에 저도 눈을 감고 묻히렵니다. 죽음이 오지 않고는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나오미도 완강하게 버티는 룻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시어머니의 불행을 젊은 며느리 룻은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이런 사랑스런 마음을 가진 여성이었다.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강권했던 나오미의 넓은 마음과
시어머니를 계속 돌보려고 했던 며느리 룻의 따뜻한 마음은 모든 이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특히 요즘같이 이기적인 삶이 판치는 시대엔 더욱 그렇다.
사실 젊은 과부 룻은 당연히 친정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도 늙고 외로운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하려 했던 그녀의 갸륵한 마음이야 말로 너무 아름다운 것이었다.
시어머니의 고향에 돌아온 후 룻은 밭에 나가 보리 이삭을 주워서 시어머니를 봉양했다.
그때 주인인 ‘보아즈’의 눈에 띄게 되었다.
보아즈도 룻의 아름답고 고운 성품에 반했던 것이다.
보아즈는 자기 밭 여기저기에다가 이삭을 떨어뜨려 놓았다.
룻은 매일같이 보아즈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다 시어머니를 섬겼다.
룻이 사려깊은 인물인 보아즈의 마음을 차지할 때도 그녀의 착하고 따뜻한 마음이 많이 작용했다.
결국 보아즈는 룻을 아내로 맞이했다.
보아즈와 룻이 결혼하여 나오미의 집안의 자손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었다.
유다인에게 있어서 자손을 이어나가는 것은 일생의 가장 큰 과업이었다.
세속적인 판단으로 볼 때 룻의 행동은 바보스럽고 무모하게 생각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룻의 착하고 따뜻한 마음씨는 결국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좋은 열매를 삶에서 거두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기주의라고 한다.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현실이다.
일이나 인간관계의 결정에서 자신의 이익에 도움여부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기 일쑤이다.
희생은 사실 사랑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의 깊이는 보통때는 알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 사랑의 진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사랑과 희생은 비례한다고 본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선택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가끔 망각하기도 한다.
보아즈는 룻을 조건이나 외모, 능력 등을 보지 않고 그녀의 마음을 보고 선택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사실이다.
룻은 구약성서에서 보기 드문 선량하고 따뜻한 마음의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르네상스 미술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현실의 삶속에서 주옥처럼 빛나는 룻의 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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