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6월 3일 가해 부활 제7주간 화요일(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dariaofs 2014. 6. 3. 00:30

 

 

성 카롤루스 르왕가(Carolus Lwanga, 또는 가롤로 르왕가)와 성 요셉 무카사(Josephus Mukasa)와 동료 순교자들은 일명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라고 불리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은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는 참으로 감동적인 순교사이다.

 

중앙아프리카 내륙지방에 살던 원주민들에게 처음으로 가톨릭 선교사를 파견한 것은 1879년의 일이다. 라비제리(Lavigerie) 추기경이 중앙아프리카의 선교를 위해 1879년에 설립한 화이트 파더들(White Fathers)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리고 우간다에서는 극히 우호적이었던 무테사(Mutesa) 추장의 도움으로 약간의 진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무왕가(Muwanga)는 자기 부족 가운데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뿌리 뽑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성 요셉 무카사 같은 열심한 부하가 있었다. 그래서 무왕가 추장은 그의 박해의 첫 희생자로 성 요셉 무카사를 참수하였다. 이때가 1885년 11월 15일이었다.

 

성 요셉 무카사의 지위를 승계한 성 카롤루스 르왕가는 추장 몰래 4명의 예비신자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그중에는 13세의 소년 성 키지토(Kizito)도 있었다. 추장은 또 다시 박해를 일으켜 모든 신자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였다. 체포된 모든 신자들은 나무공고(Namugongo)라 불리는 곳까지 끌려가면서 온갖 시련을 겪었다.

 

처형지에 도착한 그들은 1886년 주님 승천 대축일인 6월 3일에 옷이 벗겨진 채 꽁꽁 묶였고, 사형 집행자들은 밤이 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괴롭히다가 천천히 불에 태워 죽이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모두 살해하였다.

또 다른 순교자로는 마티아 칼렘바 무룸바(Mattias Kalemba Murumba)로도 불리는 성 마티아 무룸바(Matthias Murumba)가 있다. 그는 처음에는 프로테스탄트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으나 결국은 리빈하크(Livinhac)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또 다른 사람은 키고와의 추장 성 안드레아 카그와(Andreas Kagwa)인데, 그는 아내의 영향을 받아 개종한 후 주위의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받도록 했다.

성 카롤루스 르왕가와 성 마티아 무룸바를 포함한 총 22명의 우간다 순교자들은 1920년 6월 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성대하게 시복되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란 말처럼, 그들의 순교 이후 즉시 500명 이상이 영세하고 3천 명 이상의 예비신자들이 쇄도하여 오늘날의 우간다 교회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1964년 10월 18일 로마(Roma)에서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우간다의 순교자들로 성인품에 올랐다. 성 카롤루스 르왕가는 아프리카 가톨릭 청소년 활동단체의 수호성인이다.

 

강론   :   (요한 17,1-11ㄴ)

 

<영원한 생명>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2-3)."

 

이 말씀에서 '알다.' 라는 말은 '지식'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치'를 뜻하는 말입니다.

하느님,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일치 자체가 영원한 생명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에서 바로 떠오르는 것이 부활 논쟁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면서 질문했을 때(마르 12,18-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마르 12,25-27)."

 

"천사들과 같아진다." 라는 말씀은 영원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라는 말은,

"죽음이라는 것이 하느님과 사람들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

(또는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다.") 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하느님이 '죽음'이라는 것에게 사람들을 빼앗긴다면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 아닌 것이고, 그러면 하느님이 아닙니다.

사람을 영원히 죽게 만들거나 영원히 살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하느님의 '영원함'에 대해서 요한 묵시록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묵시 1,8)."

하느님 자신의 시작과 마침은 하느님 자신만의 권한입니다.

그리고 세상 만물의 시작과 마침도 조물주이신 하느님의 권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이라고 믿고 있고,

우리를 영원히 살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권한을 예수님에게 주셨습니다.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요한 17,2)."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묵시 1,17-18)."

 

따라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님과 완전히 일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그 일치를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입니다.

 

만일에 예수님도 안 믿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도 안 믿고,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연인에게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다." 같은 말을 한다면,

그 말은 빈말입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맹세하는 모습을 흔하게 봅니다.

물론 자신이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표현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빈말입니다.

그리고 만일에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되어서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그 맹세는 거짓 맹세가 됩니다.

 

영원히 사랑하려면 우선 먼저 영원히 살아야 하고,

영원히 살기를 바란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뒤를 따르는 일에 관해서 하신 말씀을

다시 새겨들어야 하고,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4-26)"

 

"내 뒤를 따라오려면"은 "내가 주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는

힘들더라도 '좁은 문'을 선택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린다고 해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망한 일이 될 뿐이다."입니다.

 

허무한 것들만 추구하는 사람은 허무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