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6월 5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4. 6. 5. 01:30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675년경 영국 웨식스(Wessex)의 크레디톤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주로 수도원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불과 7세 때에 엑서터(Exeter)의 베네딕토 수도원 학교에 들어갔고, 14세 되던 해에는 너슬링(Nursling)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윈버트(Winbert)의 지도하에 공부하였다.

 

그는 너슬링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30세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어 교수생활과 설교자로서의 생활이 성공하자 프리슬란트(Friesland)의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716년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렇게 되자 그는 718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II)가 계시는 로마(Roma)로 갔으며, 여기서 교황으로부터 라인 강 동쪽에 사는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라는 명을 받고 길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는 보니파티우스로 개명하고 3년 동안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11월 7일)를 도와 프리슬란트에서 선교사로 활약하였다.

 

그가 722년 가장 이교도적인 헤센(Hessen)으로 가서 아뫼네부르크에 베네딕토회 최초의 수도원을 설립하고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등 선교활동의 대성공을 거두게 되자, 교황은 보니파티우스를 로마로 불러들여 주교로 서품하고 교회 법령집과 독일의 모든 수도자들과 관리들에게 보내는 추천서를 써주었다.

 

이 서한은 그의 독일 선교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프랑크 왕국의 재상인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의 보호를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니파티우스는 카를마르텔의 보호를 받으며 723년부터 725년까지 제2차 헤센 선교에 나섰는데, 이때 그는 가이스마르(Geismar)에서 이교도들이 신성시하는 떡갈나무를 베어 경당을 짓는 데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개종자들이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후 그는 튀링겐(Thuringen)에 가서 오르트루프(Ohrdruf)에 수도원을 세웠고, 영국의 수도자들을 독일의 선교사로 파견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또한 그는 여러 곳에 수도원을 세웠다.

 

744년에 그와 성 스투르미우스(Sturmius, 12월 17일)는 풀다(Fulda)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북유럽에서 가장 큰 중심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과 프랑크의 교황대사로 임명되었고, 피핀을 프랑크의 유일한 통치자로 세우는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성 보니파티우스는 754년에 마인츠(Mainz)의 대주교직을 사임하고 성 빌리브로르두스의 사후 이방 관습에 다시 떨어진 프리슬란트를 재건하는데 여생을 바쳤다.

 

그가 프리슬란트의 도쿰(Dokkum) 근처 보르네 강변에서 개종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주려고 준비하던 중에 이교도들의 급습을 받아 살해되었다. '게르만족의 사도' 또는 '독일의 사도'로 불리는 그의 축일은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1874년부터 전 교회에서 기념하고 있다.

 

강론   :   (요한 17,20-26)

 

<우리나라, 우리 집>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20-21)."

 

예수님께서 믿는 이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데,

지금 믿고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기도는 아닙니다.

이 기도는 앞으로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도 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원래 예수님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당신에게 능력이나 권한이 없어서 기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들로서 아버지께 청하는 기도이면서

동시에 주님으로서 사람들에게 하시는 '호소'입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께 청하는 기도이면서

동시에 "너희는 모두 하나가 되어라." 라고

사람들에게 호소(당부)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바치신 기도의 내용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과 거의 비슷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그래서 모두 하나가 되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요한 17,24)."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하게 살면 하느님 나라에서 살게 되는 상을 받고

악하게 살면 지옥으로 가게 되는 벌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하느님 나라를 마치 남의 집이나 남의 나라로만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루카복음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보면,

객지에서 굶주리던 작은아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그는 '자기의 집'으로 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 간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루카 15,19)."

라고 말씀드려야겠다는 그의 생각이 그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돌아오자마자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겨 줍니다(루카 15,22).

작은아들을 품팔이꾼으로 삼지 않고 아들로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남의 집 자식으로 대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자녀로 맞아주실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은 자녀의 집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는 그분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이고 우리 집입니다.

 

그런데 그 비유에 나오는 큰아들의 모습을 보면,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동생을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새번역 성경에서 큰아들이 사용한 '아버지' 라는 말은

원문에서는 모두 '당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번역이 잘못되었습니다.)

그에게 아버지의 집은 자기 집이 아니었고, 그냥 '그의 집'이었을 뿐입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와 동생과 자기를 '우리' 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집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루카 15,28).

 

아버지는 그런 큰아들을 이렇게 타이릅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루카 15,31)."

이 말에는 "나의 집은 곧 너의 집이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자기 집인데도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그 비유에서 아버지가 큰아들을 타이르는 말과 같습니다.

당신의 집은 곧 우리 모두의 집이니

집으로 들어오라고 호소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