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자 료 실

바다에서 온 불레셋족

dariaofs 2012. 9. 20. 02:34

 

 

 

 

<성경의 민족들>

 

바다에서 온 불레셋족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티나 해방 기구(PLO) 사이에 평화협정이 작년에 체결되었으나 구체적인 합의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둘 사이의 분쟁지역으로 대중매체에 오르내리던 가자 지구는

기원전 12세기경 불레셋인들이 자리잡았던 다섯 도시 중의 하나이다.

 

“불레셋 사람들의 다섯 추장은 가자, 아스돗, 아스클론, 갓, 에크론의 추장들이다”(여호 13,3).

해양민족으로 알려진 불레셋인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성서에서는 그리스 밑에 위치한 갑돌(크레테) 섬에서 유래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것이 나라면, 불레셋 백성을 갑돌에서 데려 내 온것도 내가 아니겠느냐?”(아모 9,7).

여기에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유래하지 않았듯이 불레셋도 마찬가지다.

 

다만 불레셋과 갑돌이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원전 2000년대 후반에 지중해 연안과 유럽 남동부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민족 이동이 있었다.

 

‘바닷백성들(Sea Peoples)'로 불리웠던 이들 무리는

에게해 동부 지역을 비롯하여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에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었다.


그러다 이집트의 라므세스 3세에 의해 격퇴된 후 일부는 다시 바다를 건너가 크레타, 시실리, 사르디니아로 향했고,

일부는 가나안의 해안지방에 정착하여 다섯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불레셋을 세웠다.

 

이후 불레셋은 기원전 11-12세기에 영토 팽창 정책을 펼쳤다.


바다에서는 가나안의 시돈, 띠로, 비블로스와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다투었고,

내륙에서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연합체와 크고 작은 싸움을 끊임없이 벌였다.

 

 “불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때”(판관 14,4)에 삼손이 등장해 눈부신 활약성을 보이기도 했지만(판관 13-16장),

잇따른 패전으로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었던 ‘야훼의 계약궤’를 빼앗기는 불운을 맞기도 하였다(1사무 4,1-11).

 

20년 후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의 영도 아래 단합하여

미스바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둠으로써, 불레셋에게 위축된 이스라엘의 사기를 드높일 수 있었다(1사무 7,2-17).

 

하지만 길보아 싸움에서 이스라엘군이 대패하고 사울 부자가 전사함에 따라,

북부와 중부 이스라엘이 완전히 불레셋의 세력권에 떨어지게 되었다(1사무 31장).


그러나 다윗이 유대와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모셨다는 말을 듣고 불레셋이 다윗을 잡으려고”(2사무 5,17)

여러 차례 쳐 올라 왔지만 연전연패한 이래로, 불레셋은 더 이상 이스라엘에 위협을 주는 세력이 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솔로몬은 이집트와 정략결혼을 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끼인 불레셋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분열왕국 시대에 불레셋은 북이스라엘의 왕위 쟁탈전에 말려들기도 하고(1열왕 15,27; 16,15),

남유대 왕국에 조공을 바치기도 하면서(2역대 17,11) 눌러 지냈다.

 

기원전 8세기에 아시리아가 발흥하고 나서야 불레셋과 이스라엘은 그동안의 적대관계를 청산하였다.


공동의 적 아시리아에 맞서기 위해 손을 잡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들 군소 국가들은 대제국 아시리아의 말발굽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후 불레셋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패권을 강대국의 세력권에 들게 되었다.

아시리아에 이어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샤, 그리스의 지배를 받다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듯 불레셋은 이스라엘과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그들이 믿는 신은 도시국가마다 달랐다.


가자와 아스돗에서는 다곤을(판관 16,21-23; 1사무5장),

에크론에서는 바알즈붑을(2열왕 1,2), 벳산에서는 아스다롯을(1사무 31,9-10)섬겼다.

 

여기서 행해지는 점과 신탁은 잘 알려져서 이스라엘의 완 아하즈가 병세를 문의하러 사람을 보낼 정도였다(2열왕 1,2).

 

또 불레셋에서는 철기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했지만(1사무 13,19-20),

고유의 독창적인 문화를 살리지 못하고 가나안 문화에 점차 동화되어 버렸다.


고유의 말도 잃어버린 채 가나안의 한 방언으로 보이는 아스돗 말(느헤 13,23-24)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레셋인들은 땅이라는 뜻의 팔레스티나(Palestina)란 이름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이는 불레셋이 위세를 떨쳐서가 아니라, 로마인들이 유대 독립전쟁(기원후 132-135)에 승리한 후

유대인들과 적대관계에 있었던 불레셋의 이름을 따 가나안 땅에 붙여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