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자 료 실

떠돌며 사는 아람족

dariaofs 2012. 9. 24. 05:37

 

  

<성경의 민족들>

 

떠돌며 사는 아람족

 

이스라엘은 햇곡식을 바치며 “제 선조는 떠돌며 사는 아람인 이었습니다.”(신명 26,5)고 하느님께 아뢴다.

그만큼 이스라엘과 아람은 성경 안에서 가까운 관계로 제시된다.

 

아브라함은 아람의 큰할아버지다(창세 22,20-21).

또한 이사악의 아내 리브가, 야곱이 아내로 맞은 레아, 라헬은 모두 아람 사람이다(창세 25,20; 29,15-30).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성조들이 생활하던 시대에, 아람은 종족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기원전 23세기경의 아카드 문헌에 ‘아람’이 언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종족이 아니라 단지 장소로서 이야기되고 있을 뿐이다.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 1세(기원전 1116-1076년)의 비문에서야 종족으로서의 아람이 언급된다.

그러나 여기에 언급된 ‘아흘라메 아르마야’ 가 아람인만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아모리인과 비슷한 시대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아람인이 분명한 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2000년대 말과 1000년대 초에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나라를 세우고 나서이다.

 

이후 소바 아람과 다마스커스 아람 등 시리아 지역에 세워진 나라들과 베데덴(아모 1,5), 빗-자마니(수도 고잔, 2열왕 17,6)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세워진 나라들은 신흥 아시리아의 세력을 북쪽과 서쪽에서 각각 견제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시리아 지역에 아람 국가들이 세워지던 기원전 11세기 무렵은 이스라엘이 사울 왕을 중심으로 한층 강력한 집권체제에 들어가던 때였다. 따라서 두 신흥국가들은 사사건건 부디 칠 수밖에 없었다.

 

“사울은 모압, 암몬 백성, 에돔, 소바 왕,불레셋 등 사방에 있는 원수들과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어 이스라엘 왕위를 굳혔다”(1사무 14,47).


사울과 맞서 싸운 나라로 제시되는 소바 아람은 르흡의 아들 소바 왕 하다데젤 시절에 전성기를 맞았다.


다마스커스 아람 및 마아가 왕국을 속국으로 삼아 북서쪽으로 하맛 왕국과 접경하고(2사무 8,9-10참조), 남쪽으로는 암몬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제국을 건설하고 유프라테스강에까지 손길을 미쳤다.

 

그러나 다윗과의 싸움에서 크게 패한 후(2사무 10,6.16; 8,6)부터는 그 기세가 꺾이었다.

이후 소바 아람은 역사의 무대에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시리아가 등장하게 되었다(1열왕 11,23-25).


시리아는 솔로몬 사후 통일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된 상황에 힘입어 급성장하였다.


서로 맞붙어 싸우며 대치하고 있던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는 상대방 나라를 고립시키기 위해 시리아에 예물을 보내어 자기편으로 삼고자 하였다.

 

유다 왕 “아사는 야훼의 전과 왕실창고에 남아 있던 은과 금을 모조리 거두어서 사신을 시켜 시리아 왕에게 예물로 보내며 청을 넣었다.


당시 시리아는 헤지온의 손자이고 타브림몬의 아들인 벤하닷 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정하고 있었다.

 

‘부디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맺으신 동맹을 파기하시고 바아사로 하여금 우리 영토에서 물러가게 해주십시오.’“(1열왕 15,18.19).


이스라엘 왕국 북쪽에서 세력을 늘려가고 있던 시리아는 벤하닷 2세 때 이스라엘을 여러 차례 침공해 왔지만,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던 아합 왕에게 번번이 꺾이고 말았다(1열왕 20,26-34).

 

이렇듯 서로 접경하고 있는 관계로 계속적으로 싸움을 벌였던 이들 두 왕국이 손을 잡기 시작한 것은 아시리아 왕 살마네셀 3세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체해야 할 절박한 현실에 부닥치고 나서이다.


그러나 그것도 하자엘이 벤하닷을 죽이고 시리아 왕으로 즉위하고부터는(2열왕 8,28-29; 13,22년) 동맹관계가 깨져 다시 끊임없는 접전에 휘말리게 되었다(2열왕 8,28-29; 13,22).

 

이 싸움으로 시리아가 아시리아 방면으로 군사력을 동원할 수 없게 되자, 아시리아는 그 틈을 타 메소포타미아 북방에서 아시리아를 견제하던 아람 국가들을 쳐부수는데 힘을 다 쏟을 수 있었다.


그로 말미암아 아람 국가들은 차츰 약해지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기원전 855년에 가장 완강하게 버티던 비타디니 왕국마저 망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시리아는 완충지대 없이 아시리아 제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고, 갈수록 거세지는 압력을 견디다 못해 살마네셀 3세(기원전 858-824년)와 아닷 니나리 3세년(기원전 810-783) 때에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었다.

 

그리고 디글랏빌레셀 3세(기원전744-727년) 시절에는 아시리아의 한 지방으로 전략하고 말았다.


“이제 다마스커스는 도시의 모습을 잃어 돌무더기가 되고 말리라.... 시리아의 남은자도 사라지리라”(이사 17,1.3)는 예언 말씀대로였다.

 

시리아 사람들이 섬기는 대표적인 신은 폭풍의 신 하닷이었다. 아합과 맞서 싸운 벤하닷은 하닷신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왕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들 아람인들의 예배양식이 이스라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약소국인 유다 왕국이 야훼 신앙만을 끗끗이 지켜나가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유다 왕 아하즈는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 3세가 시리아 왕 르신을 꺾고 다마스커스에 달려가서 그곳의 제단 모양을 본떠다가 예배를 드렸고, 급기야는 아들을 불에 살라 바치기도 하였다(2열왕 16,1-14).

 

그보다도 페니키아인들의 알파벳을 본 따 배우기 쉽게 만들어진 아람인들의 언어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고대 근동 국가들의 언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는 아람인들이 세운 나라가 특별히 강대해서가 아니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유목민이던 아람인들이 각 나라에 자리 잡으면서 아람어를 퍼뜨렸기 때문이다.

 

예수시대에도 아람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였던 까닭에  “압바”, “마라나타”, “탈리다 쿰”,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등의 아람어가 성경에 때때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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