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자 료 실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바빌로니아

dariaofs 2012. 9. 26. 00:33

 

  

<성경의 민족들>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바빌로니아

 

바빌로니아는 현재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페르샤만에 이르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하류 유역에서 기원전 19세기경에 아카드족과 아모리족과 수메르족을 기반으로 발원되었다.

 

수메르족이 세운 우르 제3왕조가 무너진 이후 메소포타미아 유역에는 도시국가들이 이후 죽순격으로 마구 생겨났는데, 후에 바빌로니아 제국의 모태가 된 도시국가 바빌론도 그렇게 세워졌다.


이를 기점으로 영토를 더욱 확충시킨 이는 여섯 번째로 왕위에 오른 아모리족 혈통을 이어 받은 함무라비 대제이다.

  

그는 서로 패권을 다투는 도시국가 라르사에 이어 이신을 점령하는 등 세력을 크게 떨치던 엘람족을 꺾고, 마리에서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므로써 수메르와 아카드 지역을 포괄하는 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이 국력을 바탕으로 그는 고대 근동에서 통용되어 오던 법전을 집대성해 함무라비 법전을 편찬해낼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바빌로니아 제국은 아시리아도 점령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 이후로 왕위에 오른 이들은 역량이 함무라비만 못하였다. 

그래서 여러 민족의 침입을 받고 흔들리다가는 마침내 캇사이트족의 지배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기원전 12세기경에 토착민들이 이방민족을 몰아내고 이신 제2왕조(기원전 1157-1025)를 열면서 바빌로니아는 다시 세력을 떨치기 시작했지만, 느부갓네살 1세 때 잠깐 빤짝하고는 한참 기세를 떨치던 아시리아에 눌려 지내야만 했다.

 

더군다나 시리아 사막에서부터 밀려 내려오는 아람족의 대대적인 약탈을 막아내느라 국력을 헛되이 소모해 좀처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도권을 집을 수가 없었다.


다만 아시리아가 약해졌다 싶으면 곧 바로 독립전쟁을 일으켰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므로닥 발라단이다.

 

그는 사르곤 2세가 북방의 우라르트 왕국과 전쟁을 벌이는 틈을 타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바빌론에서 내어쫓기게 되자, 유다 왕 히즈키야를 문병하는 사절단을 보내는 등 외교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다음 기회를 노렸다.

 

“그 무렵 바빌론의 왕 발라단의 아들 무로닥 발라단이 히즈키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사절단을 보내어 편지와 예물을 전하였다”(2열왕 20,12). 아마도 므로닥 발라단은 이 편지에서 아시리아에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제안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아시리아는 변경에 위치한 유다와 제휴하고, 다른 편으로는 엘람에 많은 예물을 갖다 바치고 지원을 약속받았던 므로닥 발라단은 사르곤 2세에서 산헤립으로 왕위가 계승되는 기회를 틈타 봉기했지만, 독립하기는커녕 산헤립의 즉각적인 침공을 불러일으켜 바빌론 신전이 파괴되고 마르둑 신상도 빼앗기는 결과만 낳았다.

 

산헤립을 이어 왕위에 오른 에살하똔이 바빌론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벌인 각종 사업으로,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사이에 한동안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 아들 대(代)인 아수르바니팔 시절에 다시 봉기했고, 그가 죽고 나서는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갈대아의 나보폴라살은 바빌로니아의 왕이 된 후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메대와 외교협상을 벌여 시리아와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하기로 약속하고는, 메대와 함께 기원전 612년에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를 점령하였다.

 

이어 기원전 605년에 가르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 군대의 도움을 받아 재기하려는 아시리아군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한동안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쥐고 흔들던 아시리아 제국을 결정적으로 멸망시켰다.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느부갓네살 2세는 이집트의 사주를 받아 반기를 든 유다 왕국을 몇 차례 침공하였다.


기원전 597년 침공 때에 “유다 왕 여호야긴은 자기 어머니와 신하들과 장군들과 내시들을 거느리고 바빌론 왕에게로 나아가 사로잡혔다”(2열왕 24,12).

 

이때에 이아야 예언자가 일찍이 히즈키야에게 예언한대로 야훼의 전과 왕국에 있는 모든 보화를 털렸다(이사 39,6; 2열왕 20,17; 24,13).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전 시민과 고관들과 군인 일만 명, 그리고 은장이들과 대장장이들”(2열왕 24,14)이 바빌론에 끌려가게 되었다. 이것이 제1차 바빌론 유배다.

 

여호야긴 대신에 왕위에 오른 시드키야도 반란을 일으켰지만, 기원전 586년에 바빌론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나라가 망하는 비운을 초래하였을 뿐이다.

 

이때에 야훼의 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성 안 건물이 모두 불탔고, “예루살렘성에 남은 사람들과 바빌론 왕에게 항복해 온 자,

그리고 기타 남은 백성들”(2열왕 24,11)이 포로로 끌려가는 제2차 바빌론 유배가 있었다.


이렇게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면서, 아시리아 제국의 뒤를 이어 시리아와 남부 메소포타미아를 석권하였던 바빌로니아의 권세도 얼마 가지 못했다.

 

느브갓네살 이후 정권이 몇 차례 뒤바뀌다가 기원전 539년에 페르샤의 고레스에게 무릎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바빌로니아 종교는 다신교이다. 각 도시국가마다 모시는 신이 따로 있었는데, 이 도시국가들이 한데 통합되어 제국을 이루게 됨에 따라 각 도시국가들이 모시는 신들의 위계질서가 생겼다.

 

이 위계질서는 어느 도시국가가 세력이 있느냐에 따라서 새롭게 정립되었다. 예컨대, 도시국가 바빌론이 힘을 떨치자 그 도시국가의 신인 마르둑(히브리어 므로닥)이 그동안 최고신으로 여겨지던 아누와 엔릴을 제치고 올라섰다.

  

그러다 바빌론 부근의 보르시빠 도시가 득세하자 마르둑(=벨)과 함께 그 도시의 신인 나부신이 함께 숭앙받았다.

따라서 제2이사야 예언자는 “벨신이 엎드러진다. 느보신이 거꾸로 진다”(이사 46,1)는 말로 바빌로니아가 멸망하리라고 예언하며, 바빌론에 유배된 이스라엘에게 고국 땅 팔레스티나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하였다.

 

그 희망대로 이스라엘은 페르샤가 바빌론을 함락한 후, 팔레스티나로 돌아가도 좋다는 고레스의 칙령을 들을 수 있었다.

  

“페르샤 황제 고레스의 칙령이다. 하늘을 내신 하느님 야훼께서는 세상 모든 나라를 나에게 맡기셨다. 그리고 유다 나라 예루살렘에 당신의 성전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지워 주셨다.

 

그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가운데 있는 당신의 모든 백성과 함께 하시기를 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돌아가라”(2역대 36,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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