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 Maria Vianney)는 1786년 5월 8일 프랑스 리옹(Lyon) 근교에서 열심한 가톨릭 신자로 농부인 마태오와 마리 블루즈 사이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비안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5세 때에는 파리(Paris)에서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추방되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비안네는 어린 시절을 주로 부친의 농장에서 양을 치면서 지냈다. 정규 교육은 몇 개월밖에 받지 않았지만,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여 비밀리에 첫 고해(1794년)와 첫영성체(1796년)를 받았다.
18세 때 부친의 허락을 받고 에퀼리(Ecully) 본당 발레(Balley)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개인적으로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기초 교육이 부족하고 수학 능력도 많이 떨어졌다. 특히 라틴어 공부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신학생이었던 비안네는 1809년에 징집을 당해 갖은 고통을 겪었다.
1811년에 베리에르의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과정을 공부하고 1813년에는 리옹의 대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라틴어 성적이 좋지 않아 1년 만에 퇴학당한 비안네는 학과 성적은 부족하였지만 발레 신부의 도움으로 신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신심과 성품을 인정받아 1815년 8월 13일 그르노블(Grenoble)에서 시몽(Simon)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 서품 후 발레 신부가 있는 에퀼리 성당에서 2년 동안 보좌 신부로 생활한 비안네 신부는 1818년에 230여 명의 주민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42년 동안이나 봉직하면서 주민들에게 열렬한 신심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비안네 신부의 노력으로 아르스의 종교적인 분위기는 일신되었고, 그 또한 설교자와 고해신부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1827년부터 수천 명의 고해자들이 그에게 성사를 받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 아르스로 찾아올 정도였다. 매년 2만여 명의 신자들이 비안네 신부를 찾아왔기 때문에, 그는 오전 11시에 설교를 하고 성무일도와 식사, 특별한 상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약 18시간 정도 고해성사를 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동료 사제들은 그를 잘못 판단하고, 그를 무식하고 지나치게 열성적이며 허풍선이라고 비난하곤 하였다. 이에 대해 그의 주교는 “저 신부만큼이나 모두 미쳤으면 좋겠다.”고 하며 그를 옹호하였다.
이렇게 열심한 그 역시 가끔씩 사탄의 유혹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성품은 지극히 단순하였고, 충고는 간단명료하였으나 신심이 차고 넘쳤으며 직선적인 설교를 하였다. 순례자들의 소란, 끊임없는 고해성사 요구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단지 세 번 아르스를 떠났는데, 그것은 모두 수도원에 잠시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비안네 신부는 열심한 성무에 지친 나머지 1859년 8월 4일 73세의 나이로 아르스에서 사망하였다. 1905년 1월 8일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가 된 비안네 신부는, 1925년 5월 31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시성되었으며, 1929년에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본당 신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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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 (마태 14,22-36)
<물 위를 걸으시다.>
8월 4일의 복음 말씀은 '물 위를 걸으시다(마태 14,22-33).'와 '겐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다(마태 14,34-36).'인데, '물 위를 걸으시다.'와 '풍랑을 가라앉히시다(마태 8,23-27).'를 혼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이야기는 배경 상황은 비슷하지만 주제가 다르고 강조점이 다릅니다.
제자들이 호수에서 바람과 파도 때문에 고생하는 상황은 같습니다. 그러나 '풍랑을 가라앉히시다.'에서는 예수님께서 함께 배에 타고 계시고, 바로 곁에서 주무시고 계시는데, '물 위를 걸으시다.'에서는 예수님은 제자들과 따로 떨어져 계시고,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풍랑을 가라앉히시다.'에서는 제자들이 바람과 파도 때문에 자기들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고, '물 위를 걸으시다.'에서는 제자들이 자기들에게 다가오는 유령 같은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풍랑을 가라앉히시다.'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이 부족한 것을 꾸짖으시지만, '물 위를 걸으시다.'에서는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생각하면서 두려워한 존재는 유령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것을 밝히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라는 말씀은, "나는 유령이 아니라 너희의 스승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고 싶어 하다가 거센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고, 그래서 예수님께 혼나는 내용은 '풍랑을 가라앉히시다.'와 비슷합니다.)
'물 위를 걸으시다.'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장면과 비슷하고, 주제도 같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루카 24,36-37)."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후에 제자들이 처한 상황은 호수에서 예수님 없이 바람과 파도 때문에 고생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령처럼 나타나신 모습은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신 모습과 비슷합니다. 두 상황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이라고만 생각했고, 그 유령을 두려워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제자들이 유령을 두려워했다는 것보다는 "왜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생각했을까?"가 중요합니다. 질문을 바꿔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 왜 유령처럼 나타나셨을까?"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에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예수님을 만난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실 수도 있는 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그런 일은 예상도 하지 않았고,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빨리 오시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른 배를 타고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 후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부활 예고 말씀을 잊어버리고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이라고 착각한 것은 그들의 믿음이 아직 부족했고, 예수님을 참으로 맞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유령처럼 나타나신 것은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셨다는 뜻이 아니라 제자들이 그렇게 착각했을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믿음'이고, '마음의 준비'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나시든지 간에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가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바람과 파도 때문에 고생하면서(마태 14,24) 그것만 신경 쓰고 두려워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주님이신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있었거나 덜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가 갑자기 물 위를 걸어서 오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자 "그렇지 않아도 힘든 참에 더 무서운 존재가 나타난 것은 아닌가?" 라고 자기들이 스스로 만든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만 신경 쓰다가 예수님을 잊어버리거나 예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 기도하는 것도 힘들고, 신앙생활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힘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신앙생활이고 기도인데 그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물 위를 걸어서 가신 것은 제자들을 돕기 위해서 서둘러서 가신 것이고, 그래서 그 모습은 예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일이고, 또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급하게 오시는 예수님의 그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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