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7,1-9)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일은(마태 17,1-9)
'나중에' 그렇게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라고 예고하신 일이고,
동시에 제자들에게 감추고 계셨던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일이기도 합니다.
제자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예수님의 영광을 '미리' 본 것이기도 하고,
감추어져 있던 예수님의 본 모습을 잠깐 본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영광이 제자들의, 또 우리의 영광도 된다는 점입니다.
제자들은 나중에 자신들이 누리게 될 영광과 행복을 미리 체험했고,
그리고 그 영광과 행복이 지금은 땅에 묻혀 있는 하나의 씨처럼
자신들의 '삶 속에' 숨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영광이 예수님만의 영광이고 제자들과 상관없는 일이라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일을 그냥 구경한 것이고,
그 사건은 그들에게, 또 우리에게도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태 17,4)."
라는 베드로 사도의 말은,
지금의 행복 속에서 이대로 영원히 머물고 싶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어떤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제자들은 그 순간에 대단히 큰 행복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을 "주님, 저희가 이렇게 계속 지내게 해 주십시오."
라는 요청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요청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직접 대답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이 말씀을 하늘나라의 영광과 행복을 얻어 누리는
방법에 대한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말씀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라는 베드로 사도의 고백을 하느님께서 직접 확인해 주시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생명과 영광과 행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라는 말씀은,
하늘나라의 생명과 영광과 행복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예수님을 뒤따라가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특히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하늘나라의 생명과 영광과 행복은
하느님(예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마태 10,8),
주시는 그것을 우리가 받으려면
우리 쪽에서도 잘 받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준비는 바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늘나라를 체험한 일을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마태 13,44)'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따라다닌 일은
일꾼이 밭에서 일하는 것과 같고,
그들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하늘나라를 체험한 일은
일꾼이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제자들에게 밭에 숨어 있는 보물을 잠깐 보여주신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이 죽을 때까지 충실하게 사도로 살다가 순교한 것은
일꾼이 그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 것'과 같습니다.
지금 신앙인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은
밭에 숨어 있는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생활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에는 밭에 숨어 있는 보물을 직접 본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사도처럼
하늘나라의 행복을 직접 체험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스테파노 순교자처럼
하늘나라와 하느님과 예수님을 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사도 7,56),
바오로 사도가 경험한 것처럼
하늘나라를 잠깐 다녀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2코린 12,2).
그러나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직접 체험하거나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밭에 보물이 숨어 있다는 증언을 믿고 있고,
그래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혹시 이 밭이 아니라 다른 밭에 보물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밭을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여러 종교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밭에는 숨어 있는 보물 같은 없고,
눈에 보이는 밭 자체가 보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 등을 믿지 않는 현세주의자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복음서의 비유에 '보물'이라고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고,
사실은 '참 생명,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다 팔아'(인생과 목숨을 다 바쳐서)
그 보물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참 생명이 아닌 유한한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마태 16,25-26).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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