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8월 7일 가해 연중 제18주간 목요일(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dariaofs 2014. 8. 7. 01:00

 

 

성 식스투스(또는 식스토)는 257년 8월 30일에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 8월 2일)를 계승하였다. 이때 황제 발레리아누스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첫 번째 포고령을 내렸다. 군사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습격했을 때 식스투스 교황은 지하 묘지인 카타콤바 속에 있었다.

 

그 당시에는 로마(Roma)의 지하 묘지들이 신자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피아(Appia) 가도에 있는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묘지에 안장되었다.

성 식스투스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한 사람은 부제 성 펠리키시무스(Felicissimus)와 성 아가피투스(Agapitus) 그리고 차부제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성 빈첸시오(Vincentius), 성 마그누스(Magnus), 성 스테파누스(Stephanus)이다. 또 한 명의 동료 순교자로 성 콰르투스(Quartus)가 있다.

 

그도 부제라는 기록이 있으나 잘못된 기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들은 교황 식스투스 2세와 함께 순교하였기 때문에 로마 순교록에서 같은 날을 축일을 정해 공경해 왔다. 그러나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부제는 며칠 뒤에 순교하였기 때문에 다른 날 축일을 정해 공경한다.

 

이들은 프랙텍스타투스(Praetextatus) 카타콤바에 안장되어 있다. 오늘날 교황 성 식스투스(8월 7일)와 성 라우렌티우스(8월 10일) 외의 다른 순교자들은 8월 6일을 축일로 지낸다.

 

강론   :   (마태 16,13-23)

 

<하느님의 길>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16,21-22)"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는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말립니다.

그가 예수님의 인류 구원 사업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린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입니다.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말은,

"일을 그런 식으로 하시면 안 됩니다." 라는 뜻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미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이고,

구세주이신 분이라고 믿는다." 라는 고백이기도 하고,

"그리스도(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신다고 믿고 있다."

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 일을 반대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또 베드로 사도 자신도 예수님의 일을 함께 하기 위해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제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당시의 상황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 예고 말씀을 하셨을 때

제자들은 아마도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어떤 일을 할 때 이렇게 질문할 때가 많습니다.

"이 길밖에 없는가? 다른 길은 없는가?

목적지가 같다면 좀 더 빠르고 편하고 쉬운 길로 가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질문을 제자들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이 기도를 질문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이 잔을 마시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가 됩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을 이루는 방법과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일에 '길'이 하나밖에 없어서 하느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다면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길은 거의 항상 하나뿐이라는 것이,

또는 하느님께서는 하나의 길만 보여주신다는 것이 신앙생활의 어려움입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하나의 길만 보여주시는가?"

그것은 그 길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길을 모르고 있긴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분명히 다른 많은 길 가운데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쉽고, 가장 좋은 길이었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라는 말씀은

"너는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가장 좋은 길로 가려고 하지 않고

네가 생각하는 길로만 가려고 하는구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 사도가 다른 길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이

너무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고,

좀 더 편하고 쉬운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마태 16,23)".

라고 베드로 사도를 꾸짖으셨지만, 사실 그가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거부하고

인간적인 판단만으로 다른 길을 찾는다는 점에서,

또 예수님의 앞을 막았다는 점에서

그의 생각과 행동은 사탄의 행동과 같은 것이었고,

예수님에게 걸림돌이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겟세마니에서 바치신 예수님의 기도를 다시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라고 기도하십니다.

이 기도에서 "제가 원하는 대로" 라는 말씀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인류 구원'이라는 최종 목적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일치하지만,

그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대해서는 일치하지 않았던 것일까?

 

예수님의 전 생애를 생각하면,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길과 다른 길을 예수님께서 원하셨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길을 저도 원합니다. 기꺼이 그 길을 가겠습니다."

라는 다짐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우리가) 당신의 순종과 응답을 본받기를 바라십니다.

인간적으로 편하고 쉬운 길만 찾지 말고,

하느님께서 보여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길로 가라는 것.

그 길만이 정말로 우리를 위한 길이고 가장 빠르고 좋은 길이기 때문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