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Helena)는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의 드레파눔(Drepanum)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270년경에 로마(Roma)의 장군인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를 만났는데, 그녀의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둘은 결혼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콘스탄티누스가 태어났다. 293년에 남편 콘스탄티우스는 그리스도교의 박해자 중 한 명인 막시미아누스 황제 휘하에서 카이사르(Caesar)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헬레나와 이혼하고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붓딸인 테오도라(Theodora)와 결혼하였다.
306년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사망하자 콘스탄티누스의 휘하 군인들이 그를 황제로 선포하였고, 312년 10월 12일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격파하고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로 입성하였다.
그 후 그는 그의 어머니인 헬레나에게 ‘아우구스타’(Augusta)라는 칭호를 드렸다. 헬레나가 언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녀의 노력으로 밀라노(Milano) 칙령을 반포하게 하여 로마 제국 내에서 그리스도교를 인정하고, 투옥된 모든 신자들을 석방하였다.
그녀는 이때부터 그리스도교적인 모든 일을 도우면서 수많은 성당을 짓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다.
그 후 아들이 동서 로마제국 모두를 장악한 뒤에 만년에 접어든 헬레나는 325년경에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성지에 오래 머물면서 갈바리아(Calvaria) 언덕에 성당을 세웠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성녀의 상징은 십자가이며, 이콘에서 십자형의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인은 오직 헬레나뿐이다.
그녀는 330년 8월 18일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트(Izmit)인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사망하여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안장되었다.
강론 : (마태 19,16-22)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묻자(마태 19,16)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십계명을 잘 지키면 된다고 대답하십니다(마태 19,17-19).
그런데 그 사람은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마태 19,20).
아마도 뭔가 더 특별한 것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십계명만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십계명 실천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십계명을 잘 지켜 왔다고 생각했고,
예수님도 그 점을 인정하셨습니다(마르 10,21).
그러나 완전한 실천은 아니었습니다.
십계명을 완전하게 실천하려면 재산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퍼하면서 떠나는데,
복음서 저자는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19,22)."
라고 설명합니다.
그 사람은 재산이 많아서 슬퍼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슬퍼했습니다.
재산이 없거나 아주 적다면 애착을 끊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부자라는 점 자체가 죄는 아닌데,
재산이 많으면 재산의 노예가 되기 쉽고,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 재산은 아주 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젊은이'였다는 점도(마태 19,20) 중요합니다.
생을 마칠 날이 가까운 노인이라면
재산에 대해서든 무엇에 대해서든 간에
쉽게 애착과 집착을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살날이 많은 젊은이라면
자신의 인생에서 필요한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고,
그래서 버리지 못하고 망설일 것입니다.
어쩌면 앞으로 살게 될 날들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시간도 재산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젊은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젊은이가 많고,
복음 말씀에 나오는 젊은이는 특히 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경제 활동은 쓸모없다. 신앙인은 모두 가난뱅이가 되어야 한다."
라는 뜻은 아닙니다.
"재물을 왜 모으는가?"가 중요하고,
"모은 재물을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루카복음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부자가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어서
더 부유하게 된 것 자체는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닌데, 그 다음에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자." 라는
그의 이기적인 태도가 문제입니다(루카 12,16-19).
하느님께서는 그날 밤에 그의 목숨을 되찾아 가십니다(루카 12,20).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21)."
지금 말하고 있는 '재산'은 꼭 물질적인 재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학자들 경우에 물질적으로는 가난해도
자기의 학문적인 업적들, 자기가 쓴 논문들, 책들이
소중한 재산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학문 연구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심판대에 설 때에는 학자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서게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학자로서 어떤 업적을 남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를 심판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 말씀의 '젊은 부자'를 '젊은 학자'로 바꿔서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말씀도 "이제까지 쌓은 학문적인 업적들과
앞으로 쌓게 될 업적들을 포기하고 나를 따라라."
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학문적인 업적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덜 중요한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업적, 또는 명예, 명성, 인기 등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쌓은 업적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해도"
하느님의 심판 때에는 그런 업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를 볼 것입니다(마태 7,21-23).
실제로 성인 성녀들 가운데에는 특별한 업적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 성녀로 존경을 받는 것은
그분들의 생애 전체가 거룩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자기 소개서'나 '이력서'를 작성한다면, 무엇을 쓸 것인가?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것들, 경력, 업적' 등을 쓸 것인가?
내세울 것이 많다면 지금은 기분이 좋겠지만,
나중에는 그것들 때문에 슬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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