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8월 20일 가해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4. 8. 20. 00:30

 

 

테셸랭 소렐(Tescelin Sorrel)과 몽바르드 영주의 딸 알레(Aleth)의 아들인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또는 베르나르도)는 부르고뉴(Bourgogne) 디종(Dijon) 근교의 가족 성(城)인 퐁텐(Fontaine)에서 일곱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샤티용(Chatillon)에 가서 공부하면서 청운의 꿈을 펼치고 있었으나, 1107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많은 충격을 받고서 수도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원래 시토회의 설립자 3명 가운데 한 명은 아니었지만 흔히들 그를 시토회의 설립자로 부른다. 그가 새로운 수도회인 시토회에 입회한 해는 1112년 4월인데, 그 때 그는 자기 형제 4명을 비롯하여 모두 30명의 친척, 친구들과 함께 베네딕토회 규칙의 엄격한 해석을 따르기 위하여 1098년에 설립된 시토회에 들어갔다.

 

그들은 원장이던 성 스테파누스 하딩(Stephanus Harding, 4월 17일)으로부터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1115년에 성 베르나르두스는 성 스테파누스 하딩의 지시에 따라 12명의 수도자와 함께 부르고뉴와 샹파뉴(Champagne)의 경계지역에 있는 클레르보라는 고립된 계곡에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파견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엄격한 규율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나, 그의 높은 성덕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때 그 수도원의 이름을 발레 답신트에서 클레르보로 바꾸었고, 당시 68개의 시토회 수도원의 모원으로 만들었다.

그 후 성 베르나르두스는 자신의 학덕과 지덕을 활용하여 수도원의 외부 일을 처리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럽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중의 하나가 되어 통치자와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립교황인 아나클레투스 2세의 요구에 대항하여 1130년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 선출의 합법성을 지지하였다.

 

또한 그는 로테르 2세를 황제로 인정하도록 롬바르디아(Lombardia)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1140년부터 그는 공적으로 설교하는 일을 시작하여 놀라운 명성을 얻었다.

1145년에는 전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수도자였던 에우게니우스 3세(Eugenius III)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는 교황직의 의무에 대한 글을 교황 앞으로 보내어 로마(Roma) 교황청의 남용을 자제하고, 교황이 항상 목전에 두어야 할 종교적 신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교황 에우게니우스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랑그도크(Languedoc)에 파견하여 알비파(Albigenses) 이단을 대항하여 설교토록 하였고, 프랑스와 독일에 제2차 십자군 원정의 열기를 북돋우는 특사로 임명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활동과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성한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서한과 "아마(Armagh)의 성 말라키아의 생애" 그리고 "신애론"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자신의 수도자들에게 행한 강론은 "아가"로 묶었다. 그는 자신의 저술과 설교에서 성서를 광범위하게 인용하는 이유를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아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저서와 신심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그는 다양한 기질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lifluus)란 칭호를 얻었다. 1153년 8월 20일 클레르보에서 선종한 그는 1170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교황 비오 8세(Pius VIII)는 1830년에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는 스콜라 학파 이전의 신학자이며, 때로는 '마지막 교부'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문장은 꿀벌통이고 양봉업(자)의 수호성인이다.

 

강론   :    (마태 20,1-16)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8월 20일의 복음 말씀은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1-16)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고용해서 일을 시킨 다음에

품삯을 계산하는데, 일을 한 시간과 상관없이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줍니다.

 

그러자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이 불평합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마태 20,12)."

이 말을 겉으로만 보면,

한 시간만 일한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품삯을 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말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속마음을 생각하면,

온종일 고생한 자기들은 한 시간만 일한 사람들보다 품삯을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말입니다(마태 20,10).

더 많이 일했으니 더 많은 품삯을 받아야 한다는 그들의 말은

인간적인 기준으로는(또는 상식적으로는) 타당한 말입니다.

 

그러나 포도밭 주인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마태 20,13-15)"

 

포도밭 주인과 일꾼들이 계약을 맺는 장면을 보면,

주인은 이른 아침에 만난 일꾼들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했고(마태 20,2),

아홉 시 이후에 만난 일꾼들에게는 '정당한 삯'을 주겠다고 했습니다(마태 20,4).

'정당한 삯'은 "식구들이 하루 먹을 빵을 살 수 있는 돈"입니다.

만일에 한 시간만 일했다고 해서 그 일꾼들에게 '십분의 일 데나리온'만 준다면

그들의 가족들은 굶주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주인이 한 시간만 일한 일꾼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그 일꾼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자비를 베푼 일이 됩니다.

그러면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이 받은 한 데나리온은 '부당한 삯'인가?

 

지금 이 이야기는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입니다(마태 20,1).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전혀 안 하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또는 교황이나 추기경이 되어서 평생 고생한 사람은

어떤 나라에 들어가서 어떤 구원과 어떤 생명을 받게 될까?

하느님 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 구원보다 더 큰 구원?

영원한 생명보다 더 영원한 생명?

그런 건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나라이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도 누구에게나 다 똑같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일꾼들이 똑같이 받는 '한 데나리온'은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고 해도 하느님 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에 갈 수는 없고,

구원보다 더 큰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영원한 생명보다 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이 배불리 먹은 '빵의 기적'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그 자리에는 일찍 온 사람, 늦게 온 사람, 부자, 가난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섞여 있었겠지만,

빵을 더 받은 사람도 없고, 덜 받은 사람도 없이 모두 똑같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일을 더 많이 했는데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만 준다고 해서

부당하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은 품삯을 받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루카복음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와 비슷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은 큰아들과 비슷하고,

한 시간만 일한 일꾼들은 작은아들과 비슷합니다.

물론 차이는 있습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작은아들은

일하기 싫어서 자기가 스스로 집을 나간 것이고,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 나오는 '한 시간만 일한 일꾼들'은

일을 안 한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어떻든 작은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일꾼들을 대하는 주인의 모습은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자비입니다.

우리도 그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과 '큰아들'이

불성실하게 일했다는 언급이 없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포도밭 주인은 그 일꾼들이 성실하게 일했다는 점은 인정한 것 같고,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도 큰아들의 성실함은 인정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성실성이 아니라 형제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점입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하는 일꾼들도 자기들이 받아야 할 품삯을 받게 되고,

큰아들도 권리를 빼앗기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것도 역시 포도밭 주인의, 또 아버지의 자비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만일에 그 일꾼들이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함께 기뻐하지 않고,

불만을 품고 계속해서 불평하고 항의를 한다면,

또 큰아들이 삐쳐서(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기를 계속 거부한다면,

결국 그 일꾼들과 큰아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